동네 마켓의 계산대 바로 앞 통로 노상에 자장면 가게가 있다. 계산대 앞에서 장바구니 계산을 하는 환자분들이 종종 그 가게에서 점심으로 자장면을 먹고 있는 나를 정면으로 보게 된다. 입가에 묻은 자장을 냅킨으로 닦아가며 먹는 모습도 보았을 것이다.
가끔 이곳을 찾는 이유는 바쁠 때다. 5분 안에 식탁에 자장면이 놓여 지니 금방 먹어 치울 수가 있어서 좋다. 짧은 점심시간 음식 기다리는 시간도 절약되고, 또 다른 식당에서처럼 나 홀로 음식 나오기를 기다리며 벽만 멀끔히 쳐다보는 멋쩍은 순간을 피할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이곳은 내겐 짧은 휴식이자 허기를 채울 수 있는 몸과 마음의 피난처이다.
옛 시절, 긴 지루한 기차여행 중간 간이역에 잠간 내려 선채로 후루룩 먹던 따스한 열차국수의 감촉이, 서민의 온기가 추억 속에 떠오르곤 한다. 자장면도 과거에 자주 먹곤 하였기 때문에 그때 더불어 있었던 에피소드가 많이 떠오르게 된다. 망각된 채 우리의 삶속에 묻혀있는 추억들이다.
아득하게 먼 추억엔 힘들었던 것이었어도 항상 따스함이 스며있다. 그리움이 있다. 더욱이 자장면 먹던 시절은 부족함과 온유함, 순수함이 더 많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지금도 자장면을 자주 찾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따뜻한 온기가 있을 때, 점심시간에 먹으면 더 할 나위 없이 맛이 좋다. 검은 춘장을 찍은 새하얀 양파를 씹으면, 눈길을 사각사각 밟는 소리가 나서 좋다.
진찰을 받으러 오신 분들 중에는 자장면을 같이 먹자고 제의하는 연로하신 환자 몇 분이 계신다. 마켓 안에서 종종 자장면을 먹는 나를 보았다며 꼭 한번 대접하고 싶다고 하신다. 두텁지 않은 주머니 사정을 잘 아는 나로서는 그들의 호의에 가슴이 찡하곤 한다. 형편과 시간을 생각하며 사양하곤 하지만 그들의 따듯한 마음을 대신 맛보곤 한다.
일전에 마켓에 들어서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불쑥 나의 손을 꽉 잡고 자장면가게로 끌고 가며 같이 자장면을 들자는 할아버님이 있었다. 대접받는 것이 송구스러워 물건을 사러 왔으며 바빠서 서둘러 오피스로 돌아가야 한다고 딴청을 부렸으나 막무가내다. 그러면 ‘투-고’로 싸가지고 가서 시간이 허용되면 사무실에서 먹으라며 주문한 ‘곱빼기’ 자장면이 나올 때까지 손을 놓아주지 않으신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틈날 때 점심은 찾아 먹어야 된다고, 때를 놓치면 몸이 상한다며 손자에게 타이르듯이 말씀하신다. 내 나이도 만만치는 않은데…
손에 꼭 쥐어준 자장면 상자를 들고 나오면서 자장면에 관한 어느 구절이 떠올랐다 :
“사랑은 자장면을 먹는 것과 같다” -
따듯할 때가 가장 맛이 있는, 아무리 깔끔하게 먹으려고 노력해도 그만 입 주변을 더럽히고 마는, 너무 자주 먹어서 물린 나머지 다시는 먹지 않겠다고 다짐해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또다시 그리워지는 그래서 다시 찾게 되는, 자장면을 먹을 때는 짬뽕이 그립고, 짬뽕을 먹을 때는 자장면이 그리워져 안보면 다시 보고 싶어지는 사랑과 꼭 같다는 자장면…
그리운 옛 시절 서민적인 정겨움과 은근한 온기가 사랑의 속성과 공통점이 있는 자장면을 받아 들고 오피스로 향하는 발걸음이 빨라진다. 면의 온기가 가시기 전, 윤기 나는 면발을 먹게 될 것이다.
자장면을 사주신 할아버님의 은근한 사랑이 담긴 따스한 마음을 느끼겠지. 양파를 씹을 때는 사각사각 눈 밟는 소리도 들을 것이다. 애첩처럼 입술에 찰싹 달라붙는다는 검은 자장을 혀끝으로 아래위 좌우로 닦아가면서 싸주신 분의 온기를 입속에서 아니, 가슴속에서도 느낄 것이다.
식탁에 그냥 놓여 지기만 한다면 6달러짜리 음식일 뿐 이지만 음식과 함께 주신 분의 마음으로 그림 액자를 짜서 그 속에 자장면 한 그릇을 넣으면 이는 값비싼 작품이 되고 예술이 되는 것이다. 곱빼기로 따스하게 사랑의 의미와 자장면의 맛이 조화를 이루어 입안과 가슴까지도 충만하게 채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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