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우 재정위원이 케빈 밴 오렌지 교구 주교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가톨릭 교회에서도 한인의 저력은 다양한 방면에서 발휘되고 있다. 특유의 부지런함과 열정 그리고 영성에 주류 교계도 박수를 보낸다.
미 전국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팎에 꼽힐 만큼 대형 교구인 가톨릭 오렌지 교구의 재정위원도 한인이 맡고 있다. 세례명이 요셉인 박동우 재정위원이 바로 주인공이다. 남가주 한국순교자 천주교회에 교적을 두고 있는 박 위원은 오렌지 교구 전체의 57개 성당과 5개 센터를 비롯해 수많은 각급 가톨릭 학교 등 교육기관과 봉사기관의 재정을 감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는 한인사회에는 널리 알려진 올드타이머 가운데 한 명이다. 남가주 장애인재활협회 회장과 물덴동산 회장 등을 맡아 개신교 교회와도 많은 사역을 함께 벌였다. 현재 샤론 쿼크-실바 주 하원의원의 보좌관이지만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연방 정부 차관보인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위원을 지냈다. 연방 상원의 인준 절차를 거쳐야 하며 고 강영우 박사가 2008년까지 맡았던 자리다.
미국 가톨릭에서도 큰 영향력을 가진 오렌지 교구가 소수계인 그를 재정위원으로 임명한 데는 그의 이런 이력과 함께 직급에 연연하지 않는 신앙심을 높게 산 것으로 알려졌다.
오렌지 교구의 케빈 밴 주교는 “우리 교구는 전문 지식, 경험, 믿음으로 헌신하는 박동우씨의 충실한 노력의 혜택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금융 및 재정관리 분야에서 그의 예리한 통찰력과 상담능력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박 위원은 한국 순교자 본당 ‘천상의 모후’ 쁘레시디움 부단장과 ‘순교자의 모후’ 꾸리아 부단장으로도 매주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저는 부족한 게 너무 많은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교구의 도구로 불러서 써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부끄럽지만 이왕에 맡은 사명이니 교구를 위해서도 최선을 다해 노력하려고 합니다.”
박 위원은 넉넉지 않은 생활 속에서도 주일 미사를 빠지지 않던 어머니의 믿음을 이어 받았다. 신앙은 그의 인생을 이끌어가는 근원적인 힘이다. 사람으로서는 이루기 힘든 일도 성령의 능력이 돕는 경험을 하면서 장애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고 털어놓았다.
“세 살 때 왼팔에 소아마비가 왔어요. 청소년 시절 반항도 하고 원망도 했죠. 하지만 이제와 보면 예수님을 향한 신앙이 비뚤어지지 않고 저를 지키는데 결정적인 도움이 됐습니다. 저와 같은 장애인을 쓰시면서 하느님의 일을 이루는 모습을 보여주신 거지요.”
그는 이제껏 걸어온 인생에서 ‘신비한 힘’이 곳곳에서 그를 인도하고 도왔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제가 능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또 뭔가 되기 위해 그렇게 노력한 적도 없어요. 18세에 이민 와서 대학도 소수계 우대정책의 덕분으로 입학했어요.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저 자신이 치열하게 계획한 것도 없고요. 부족한 저를 주님께서 이끌어주신 거지요.”
차관보 직급을 맡다 의원 보좌관 일을 하기도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그는 한인들이 주류정치의 힘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정원 종교전문기자> walkingwithj@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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