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리제독이 미해군 함대를 이끌고 일본의 개항을 요구했을 때(1853년) 제일 놀란 것은 사무라이들이었다. 웅장한 군함과 엄청나게 큰 대포를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야마구찌현 출신의 도라지로라는 젊은 사무라이는 미국유학의 꿈을 안고 이 함대에 잠입하여 밀항하려 했으나 실패하자 고향에 내려가 쇼카 숀주쿠라는 정치학원을 만들어 제자들을 양성하기 시작했다. 이 도라지로가 근대 일본사상의 아버지로 불리는 요시다 쇼인이다.
요시다 쇼인은 막부가 왕의 동의없이 미일통상조약을 체결하자 왕정복고를 외치며 막부 타도에 나섰다가 29세의 젊은 나이에 처형 되었다. 그의 정치학원은 다카스기 신사쿠, 구사카 겐즈이, 이토 히로부미 등 뒷날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의 주역이 되는 주요 지도자들을 배출했으며 초대 조선총독을 지낸 데라우찌도 이 학원 출신이다.
그가 감옥에서 쓴 저서 ‘유수록’은 일본이 사무라이끼리 싸우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자세히 담고 있는데 북으로는 조선과 만주를, 남으로는 오키나와, 대만, 필리핀을 정벌해야 일본이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부국강병 논리를 펴고 있다. ‘유수록’은 사실상 유신과 대동아전쟁의 교과서 역할을 해 그는 근대 일본의 영웅으로 추앙 되었으며 그의 고향 야마구찌현의 하기에는 요시다 쇼인을 기리는 신사까지 세워졌다. 그의 사상은 한마디로 ‘강한 일본’이다.
일본총리 아베가 가장 존경한다는 그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께가 바로 요시다 쇼인 사상의 광신자인데다 두 사람 모두 야마구찌현 출신이다. 아베의 외할아버지는 2차대전 때 군무상으로 일한 A급 전범자다. 그는 석방되자 자민당 창당요원으로 활약했으며 57년 총리에 당선되기도 했다.
독일과 일본의 다른 점은 독일은 2차대전 후 통치자가 완전히 바뀌어 정신적으로 새로 태어났으나 일본은 새로 태어나기는커녕 전범자들이 다시 복귀해 메이지 유신과 2차대전 당시의 일본을 세계강국으로 그리워하며 ‘강한 일본’을 다시 꿈꾸고 있다는 사실이다. 요시다 쇼인이 외친 부국강병이 아베 총리의 철학이다. 독일의 집권자들은 피가 완전히 바뀌었는데 일본 집권층은 메이지 유신의 피가 그대로 흐르고 있다. 히틀러와 괴벨스, 아이히만의 손자들이 다시 정계를 주름잡고 있는 격이다. 맥아더 사령부가 무리해서라도 천황제를 폐지 시켰어야 되는데 좋은 게 좋은 거다 식으로 넘어가는 바람에 일본은 민주주의 국가로 태어나지 못하고 자꾸 복고주의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요즘 도쿄와 오사카에서 벌어진 일본 우익단체 데모에는 “조선인을 죽이자” “한국 상품을 사지 말자”는 극단적인 구호가 등장하고 있다. 도쿄의 코리아타운인 신오쿠보의 한인상점들은 이들의 방해로 매상이 격감하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오늘 아침에는 문부성 차관이라는 자가 “위안부 문제는 날조 되었다. 위안부들은 일본군에 진심으로 고마워했다”고 말하는데 그 표정이 얼마나 비아냥거리는지 밥 먹은 게 소화가 안될 지경이다. 한국인과 중국인에 대한 극우단체의 증오가 심해져 타민족과의 충돌이 일어나기 반보직전이다. 나치가 유대인 상점을 박살내던 ‘크리스탈 나이트’를 연상케 한다.
일본이 메이지 유신이래 두 번째 커다란 사상적 갈등을 겪고 있다. ‘강한 일본’으로 가느냐, ‘민주 일본’으로 가느냐의 기로에 서있다. 아베 정부는 한국과 중국의 일본증오를 부채질하여 일본국민이 위기감을 느끼도록 몰아가고 있다. 메이지 유신 때도 그랬지만 이번 애국운동도 국민이 아니라 집권층이 주도하고 있다. 일본이 애국을 외칠 때 마다 한국은 너무나 피곤하다. 일본, 정말 왜 이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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