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 106세 이옥동 옹, 6일 플러싱 중앙장의사 입관예배
2008년 100세 생일잔치 당시 자손들에 둘러 쌓여 축하를 받고 있는 이옥동(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 할아버지.
뉴욕일원 한인 최고령자로 알려진 이옥동 할아버지가 만 10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일제 강점기를 앞둔 1908년 서울에서 태어나 해방과 6.25전쟁 등 한국의 격동기를 모두 겪은 이 할아버지는 지난 4일 열흘간의 혼수상태 끝에 퀸즈 플러싱병원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임종했다.
장남 이청일(69)씨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늘 삶이 긍정적이셨던 분”이라며 “돌아가시기 전까지 행복하고 평안한 삶을 강조하셨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이 할아버지가 장수할 수 있던 비결도 “잘 먹고, 편안하게, 걱정하지 않고 살았기 때문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이 고향인 이 할아버지는 광복 직전까지 이북에서 철도청에 자제를 납품하던 사업가였다. 광복 이후 북한의 공산정권에 재산을 몰수당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가 6·25 전쟁 때 부산으로 피난을 내려가 양식당 ‘태극그릴’을 차려 경제적으로 큰 성공을 이뤘다.
장남 이씨는 “아버님은 돈까스, 비후까스와 같은 음식이 매우 생소하던 시절 부산에서 유일한 양식당을 운영하셨던 분”이라며 “당시 대한민주청년동맹을 이끌던 김두한씨가 아버님의 식당을 자주 찾던 단골이었다”고 말했다.
이 할아버지는 68세때 자식들이 있는 뉴욕으로 이민을 와 2006년 94세의 나이로 별세한 정수복 여사와의 사이에 2남3녀, 11명의 직계 손자손녀, 4명의 증손자가 있는 대가족을 이뤘다.
이 할아버지의 장례식은 6일 입관예배 형식으로 플러싱 중앙장의사에서 열리며 다음날인 7일 부인 정 여사가 먼저 잠들어 있는 롱아일랜드 파인론 메모리얼 공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함지하 기자>A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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