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전 몽골의 바가반디 대통령이 KAL(대한항공) 간부들을 울란바토르 대통령궁에 초청하여 디너 파티를 베푼 적이 있었는데 나도 우연히 그 자리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바가반디 대통령이 대한항공 간부들을 초청한 것은 KAL이 몽골에 보잉747 여객기 1대를 무상 기증했기 때문이다. 몽골이 KAL 덕분에 처음 747 여객기를 보유하게 된 것이다.
바가반디 대통령은 이날 파티에 부인을 대동하지 않고 딸을 데리고 나왔다. 한국에 유학해 서강대학을 졸업한 딸에게 통역 겸 호스티스 역을 맡긴 것이다. 그런데 인상적인 것은 그의 디너 테이블 스피치였다. 몽골인들은 제주도에 가보는 것을 소원으로 삼고 있다며 “한국에서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몽골인들을 여러분들이 잘 좀 도와주기를 간곡히 부탁한다”며 인사말을 맺었다. 그의 표정이나 액센트로 미루어 그 부탁은 정말 간절해 보였다.
몽골인들은 주로 서울 을지로 6가 근처 광희동 골목에 상가를 이루고 있는데 서울시 통계에 의하면 4,630명으로 나타나 있다. 전국 각 공장에 취업한 몽골인을 합치면 1만여명에 이른다고 한다. 몽골거리 바로 옆 골목이 러시아인 거리다. 그리고 여기서 동대문 시장을 거쳐 신창동 동묘 앞에는 네팔 거리가 형성되어 ‘나마스떼’ ‘뿌자’ 등 네팔 이름의 식당이 줄지어 있다.
몽골, 네팔 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영등포 남구로역(지하철) 주변은 ‘옌벤 거리’로 불리는데 대림동 주민 8만1,500명 가운데 조선족이 1만5,300명이나 된다. 그런데 ‘옌벤 거리’는 상가가 좀 누추한 편이고 어딘가 으스스한 느낌을 준다. 이곳에서 한 정거장 떨어진 대림동이 ‘중국인의 명동’으로 불리 운다. 주말이면 사람이 너무 붐벼 식당마다 줄을 서야 할 정도다. 지하철 2번이나 7번을 타고 대림역에 내리면 12번 출구로 나가야 중국인 명동거리를 제대로 발견하게 된다.
나는 지난주 서울의 다문화 거리를 돌아보기 위해 친지 여러 사람에게 대림동에 관해 물었으나 가본 사람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중국인들에게 물어 대림동역을 찾아갔는데 영등포 대림동역은 출구가 12개나 되는 대규모의 지하철역이었다. 그리고 모든 출구가 중국인과 조선족 가게들로 이어져 있으며 이 가운데 12번 출구 골목이 가장 번화한 ‘중국인 명동’이다. 골목의 네온사인이 온통 중국어로 쓰여져 있고 이 골목에서 한국어를 사용하면 외국인 취급을 받는다. 완전히 먹자골목으로 매운 마라탕이 별미이고 꼬치안주가 주 메뉴를 이루고 있다. 식당은 담배연기로 꽉 차 숨이 막힐 지경이고 테이블마다 중국인들이 어찌나 큰 목소리로 이야기하는지 거기에 맞추어 목소리를 높이다 보면 목이 아플 정도다.
서울의 얼굴이 변하고 있다. 서울 거주 외국인이 24만7,108명(2012년 현재)이나 된다. 그중 조선족이 14만893명으로 으뜸을 차지하고 있다. 다음이 중국인 3만9,151명이다.
그런데 이들이 미국의 코리언과 다른 점은 한국에 영주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돈 벌어 금의환향하기 위해 왔다는 점이다. 한국인들은 조선족을 한국계로 간주하고 있지만 이들은 자신을 중국인으로 생각하고 있다. 4-5년 고생해 돈을 모으면 귀향한다. 지난 한해 중국으로 돌아간 조선족이 3만7,493명이나 되는 사실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이들은 왜 한국에 영주하지 않으려 할까. 한국인들의 타민족 차별이 심하기 때문이다. 한국서 살아봤자 2세들에게 희망이 없다. 한국정부의 다문화 정책은 타민족을 ‘한국인화’ 하는 데만 치우쳐 있으며 상대방 민족의 문화를 이해하는데 너무 무관심하다. 한국의 다문화 거리가 임시적이고 엉성한 반면 미국의 코리아타운이 영구적인이고 해마다 발전하는 이유는 한국은 용광로 식 다문화 정책을 펴고 있고 미국은 샐러드볼 식 다문화 정책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