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주영씨는 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국사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다”며 “그 결과로 나온 것이 <객주>”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예전 청송감호소 바로 앞이 제 고향집이라 새벽녘 형기 마치고 출소하는 사람들을 관찰하러 가본 적이 있다. 한 출소자가 담배를 빌리길래 피우던 담뱃갑 통째로 라이터와 함께 건넸는데, 그가 배낭에서 주섬주섬 뭘 꺼내더니 답례라며 주더라. 감옥서 훔쳐 나온 책인데 정말 재미있으니 꼭 읽으라면서. 그게 <객주> 1,2,3권이었다.”19세기 말 보부상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통해 근대 상업자본의 형성 과정을 그린 소설가 김주영(74)씨의 대표작 <객주>가 마지막 10권(문학동네 발행)을 내놓으며 34년 만에 완간됐다. 1979년부터 5년간 서울신문에 연재된 <객주>는 1984년 아홉 권의 책으로 묶여 이미 개정판까지 나와 있지만, 작가 스스로는 한 번도 완간이라고 여기지 않았던 작품이다.
<객주>는 5년 간의 사료 수집과 3년에 걸친 장터 순례, 200여명의 취재로 완성된 한국 문학사의 기념비적 대하소설. 피지배자인 백성의 입장에서 근대의 역사를 복원함으로써 왕조사 중심이던 한국 역사소설의 흐름을 바꾼 작품이기도 하다.
<객주>는 상행위를 주제로 한 최초의 소설답게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정주영 전 현대 회장, 김우중 전 대우 회장 같은 수많은 기업가들을 매료시켰다. 작가는“<객주>로 얻은 큰 수확 중 하나는 이 작품을 읽고 중견 기업가 10인이 후원회를 만들어 금전적으로나 심정적으로나 저를 많이 도와주고 있다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제 독자는 여성보다는 남성이 많고, 남성 중에서도 장기수들이 많다”는 농담 속에선 장기수를 애독자로 둔 서민 출신 작가의 긍지 같은 것이 비쳤다.
작가의 마음 속에서 <객주> 완간의 기획은 4년 전 시작됐다. 그는 경북 울진 흥부장에서 봉화의 춘양장으로 넘어가는 보부상 길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고서 “이제 진짜 <객주>를 끝맺을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고 한다. 그 길이 바로 울진 죽변항에서 내륙 봉화까지 소금을 실어 나르는 길인 십이령고개다. 어릴 때 동네에서 많이 듣던 소금 장수 이야기를 떠올리며 작가는 1년 반이나 진행된 취재와 답사에 들어갔다. 10권은 주인공인 보부상 천봉삼이 처자식과 숨어살다가 숱한 고초를 겪고 울진 소금 상단의 행수로 재기하는 과정을 그렸다.
과거 100만부나 팔렸던 이 작품을 오늘날의 젊은 독자들도 읽을 수 있을까. 작가는 “그런 생각 안 했다. 어차피 나는 나긋나긋한 소설은 못 쓴다. 다만 장기수들이 읽어줬으면 좋겠다”며 농반진반 답했다. “요즘은 돈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구매층이 60~75셉니다. 이분들이 사주면 되는 겁니다. 하하.”문학평론가 황종연은 “<객주>는 한국의 경제 개발 세대가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심오한 상실을 경험하는 가운데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배양한 노스탤지어의 장대하고 순정한 문학적 표현”이라며 “한국의 서민은 고향을 잃어버린 대신에 <객주>를 얻었다”고 평가했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