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지, 패러다임을 바꾸자 복지 인프라, 공공이 나서라
▶ 공공 어린이집·요양시설 각각 5.3% 2.7% 불과 들어가려면‘별따기’수준 보육료 편법으로 올리고 부실급식·보조금 횡령 예사 이용자가 부담 떠안아 서비스 공공성 높이려면 국공립이 30%는 넘어야
무상보육에 대규모 국가재정이 투입되고 있지만 일부 수준 미달의 민간 어린이집 때문에 예산 낭비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어린이집에서 아동들이 수업을 받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 강동구 명일동 A어린이집 원장 정모(49)씨는 인근 시장에서 버린배추 시래기를 대량으로 가져다 수시로 원생들에게 국을 끓여 먹였다. 이런 방법으로 80여명의 원생과 보육교사들의 한끼 식사를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은 고작 1만2,000원. 한 사람식사에 150원꼴이다. 정씨는 식비를줄이려고 유통기한이 지난 닭도 썼다. 정씨가 최근 3년간 이렇게 횡령한 국고보조금은 모두 7억3,000만원에 달한다. 대부분의 복지 서비스를민간이 도맡아 공급하는 우리나라의복지 공급 구조가 각종 부작용을 낳고 있다. 공공성이 핵심인 복지 서비스를 이윤 추구를 지상 목적으로 하는 시장에 맡기면서 돈(재정·보험료)은 돈대로 쓰고 서비스 질은 질대로하락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민간을 견인해 전체 복지 서비스의 평균을 높이려면 국·공립 시설을 늘려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민간 중심으로 제공되는 대표적인 복지 서비스는 보육과노인 요양이다. 2011년 기준 국·공립어린이집은 약 2,116개로 전체 어린이집의 5.3%에 불과하다. 노인 장기요양시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구립·시립 등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요양시설(입소시설)은 전체의약 2.7%(111개)뿐이다.
문제는 민간에 편중된 복지 서비스구조 탓에 서비스 이용자들이 비용과 부작용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이 어린이집의‘보육료 부풀리기’다.
장미순 참보육을 위한 부모연대 운영위원장은“민간 어린이집에서 아이들 식단에 유기농 우유를 하나 끼워놓고 유기농 식단비를 따로 받거나각종 편법을 동원해 특별활동비를받는 보육료 부풀리기가 관행이 된지 오래”라며“보육은 민간 경쟁으로가격이 떨어지고 서비스 질이 좋아지는 순기능보다는 학부모들의 가계 부담이 늘어나는 역기능이 크다”고 말했다. 2010년 보건복지부의 보육실태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대부분의 학부모가 추가 부담하는 특별활동비가월 5만원을 넘는 비율이 국·공립은17.2%인데 반해 민간은 41.9%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간 운영자가 수익성이 낫다고 판단하는 곳으로 몰리면서 복지 사각지대가 발생하는 것도 문제다.
2010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의‘농어촌지역 장기요양서비스 체계 개선방안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농·어촌의평균 노인 요양시설 수는 6.9개로 대도시(12.3개)의 절반 수준이며 재가(방문) 노인 요양시설 역시 32.1개로대도시(112개)의 3분의 1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등 도시는 과다 공급, 농·어촌은 과소 공급되는 복지인프라의 불균형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가 지원하는 국고보조금을‘눈먼 돈’이라고 여기는 사업자들 때문에 복지 시설은 종종 불법의 온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건보공단에 따르면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시행된 2008년 이후 2011년까지 4만3,170개의 시설이 노인장기요양급여 부정수급 등13만 5,979건의 불법·부당 행위로적발됐다. 민간 어린이집에서도 해마다 부실 급식, 보육료 부정수급 등비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이유들로 민간 시설에 들어가기 꺼려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국·공립 시설의 숫자는 늘지 않고 있어 보육이든 요양이든 국·공립 시설에 들어가기란‘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4세와 3세 두 아이를 둔 주부 강모(37)씨는“국·공립 어린이집에 아이를보내려고 대기를 걸어놨는데 1년이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라 마음을 접었다”며“요즘은 임신하자마자 출산예정일 계산해서 대기 명단에 올려놔야 한다더라”고 말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시내 국·공립 어린이집 대기자는 10만 명을 넘어섰다. 장기요양시설은 입소자가 사망해야 자리가 생기는 특성상 대기자 회전율이 훨씬 더디다. 서울 시내에 있는 시설은 대기자가 정원의 평균 2배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현저히 낮은 국·공립시설 비율을 높여 민간을 견제하는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은정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는“사회복지 서비스의 공공성을 높이기위해서는 공공 시설 비중이 전체의최소 30%는 되어야 시장을 견제하고 견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처럼 5% 미만의 수준으로는 이익집단화된 민간 시설에 끌려 다닐 수밖에없다는 것이다. 전용호 남서울대 노인복지학과 교수는“재정을 고려해 공공 시설 비율을 점진적으로 늘리면서 동시에 영국처럼 복지 시설을 상시 조사하는 관리·감독 기구를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보육과 유아교육에 대한 우리나라의 공공 지출은 국내총생산(GDP)대비 0.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평균 정도이고, 장기요양에 대한 공공 지출은 GDP 대비 0.4%로 OECD평균(1.4%)에 못 미치는 실정이다.
<송옥진기자 click@hk.co.kr>
<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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