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표 장군 졸수연에 200여 하객 몰려 장수 기원
‘한국 현대사 및 미주한인 이민사 산 증인’ 평가
한국 현대사와 미주 한인이민사의 산 증인으로 불리는 박남표 초대 타코마한인회장의 90회 생일을 축하하는 잔치에 개인 행사로는 드물게 250여명이 참석해 대성황을 이뤘다.
장남인 박인철 대기산업 회장 등 네 아들이 주선해 지난 16일 페더럴웨이 코앰TV 공개홀에서 연 구순 축하연에는 시애틀지역은 물론 이웃 오리건주에서까지 각계 각층의 한인들이 찾아와 서북미 한인사회 큰 어른이자 별(★)인 그의 건강과 장수를 기원했다.
한인사회에서 ‘박남표 장군’으로 불리는 박 전 회장의 삶은 질곡과 굴레로 점철된 한국 현대사와 궤를 같이 한다. 그는 독립무장단체인 황해도 구월산대 출신으로 옥천동 탈옥사건을 주도했던 독립투사 박지영의 장남으로 1923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중국 두만강 근처의 회룡봉에서 자라나 일본에서 공부한 뒤 육군사관학교를 2기로 졸업하고 일선 사단장으로 6ㆍ25 골육상쟁을 치렀다.
이날 졸수연에는 박 전 사단장의 휘하 소대장이었던 임공빈씨가 멀리 시카고에서 찾아와 62년만에 해후하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박 장군은 “휘하부대를 시찰하다가 당시 임 소대장의 근무자세에 감동해 주머니에 있던 사탕 하나를 건네 줬는데 세월이 흐른 후 임 소대장이 미국으로 이민 와 캔디 공장에 다니면서 매년 사탕과 껌을 나에게 보내주며 몇 배로 갚았다”고 각별한 인연을 소개했다.
박 전 회장은 최전방 부대의 연대장과 사단장을 거쳐 육군 논산훈련소장을 지냈고, ‘투 스타’소장으로 1970년 예편한 뒤 한국 사이클연맹 회장 등을 역임한 후 1973년 이민 길에 올랐다. 타코마 지역의 미국 회사에 취업해 이민생활을 하는 가운데 한인들의 단결과 화합을 위해 1977년 타코마 한인회를 창설, 초대 회장을 지냈다.
<어머니>와 <국경의 벽, 넘고 넘어>란 2권의 책을 발간한 박 전 회장은 1993년 미국에서는 처음으로 한국전 참전비를 올림피아 워싱턴주 청사에 건립하는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그는 특히 한인정치인 양성 등 후세들의 교육에 각별히 헌신해왔을 뿐 아니라 한국 문화 전통 보존에도 남다른 열정을 쏟아오고 있다.
박 전 회장의 후배(육사 29기)인 정창인 한미 애국단체연합 회장은 이날 ‘내가 본 박남표 장군’이란 축사를 통해 “박 장군님은 외유내강의 한국 선비정신을 간직하고 있다”고 칭송하고 여생을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사시라고 기원했다.
박 전 회장은 “나이 90에 오갈 데가 있고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 기쁘다”고 밝히고 “굳이 장수 비결을 말하자면 마음을 편안하게 먹고, 늘 감사한 마음으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축하해준 한인사회에 감사를 전했다
황양준기자 june66@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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