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부의 약품 복용은 반드시 전문의의 상담을 거쳐야 한다.
임신부들은 웬만하면 약을 먹지 않으려든다. 아니, 적어도 40~50년 전에는 그랬다. 태아에게 혹 영향을 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1960년대 초반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탈리도마이드’ 사태 이후 임신 중 약물복용은 금기사항으로 자리 잡았다. 탈리도마이드는 당시 독일과 일본에서 판매되던 수면제다. 이 약은 진정효과가 강해 임신부의 입덧 치료제로도 널리 사용됐다. 임신 중 복용해도 안전하다는 광고를 믿고 이 약을 처방받았던 임신부들이 잇따라 손가락과 발가락이 기형인 이른바‘단지증’ 아기를 출산하면서 엄청난 후폭풍이 몰아쳤다.
첫 3개월간 처방약 사용 30년간 60% 이상 늘어
안전성 여부 주로 인터넷 통해 확인도 위험성 커
복용약 수 되도록 줄이고 의사와 사전상담 필수
탈리도마이드 사건 이후 아기를 가진 여성은 거의 모든 종류의 약을 멀리했다.
당시 임신부들 사이에서 약물공포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보여주는 일화는 수도 없이 많다.
양쪽 폐 모두에 염증이 생기는 복수폐렴을 앓던 한 여성은 항생제와 코데인을 처방받았지만 이를 복용하지 않으려들었다. 태아에게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막무가내였다.
마지막 설득에 나선 의사는 “이 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당신이 죽고, 당신이 죽으면 태아도 확실하게 죽는다”는 반 협박으로 임신부의 고집을 꺾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탈리도마이드 사건 발생 이후 반세기가 지나자 약품에 대한 임신부들의 기피증은 봄눈 녹듯 사라졌다. 처방약과 비처방약은 물론 한방재로 만든 자연 보조식품을 겁 없이 섭렵하는 철없는 임신부들이 크게 늘어났다.
의약품 복용이 태아 발육에 미치는 영향을 모니터하는 질병통제예방센터의 전문가들에 따르면 지난 30년간 임신 후 첫 3개월간 임신부의 처방약 사용은 60% 이상 증가했다.
임신부의 약 90%가 최소한 한 가지의 약을 복용한다. 한 종류 이상의 처방약을 이용하는 임신부도 전체의 70%에 달한다. 행여 하는 마음에 감기약마저 멀리하던 전 세대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1970년대 말 이후 네 가지 이상의 약을 섞어 먹는 임신부의 수는 2배 이상 늘어났다.
또한 임신 후 첫 3개월 사이에 임신부 열 명 가운데 한 명이 한방 ‘보약’을 먹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스턴 공중보건 의과대학원 교수인 알렌 미첼 박사는 “사회 전체가 약품의 위험을 망각한 것 같다”며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비처방약품은 안전하다고 생각들 하지만 이들은 대부분 임신과 관련한 부작용 연구를 면제받은 상품들”이라고 말했다.
미첼 박사는 의학의 진보가 임신부의 약물복용 증가에 기여했다고 지적했다. 우울증을 비롯한 많은 증상들이 이제는 치료를 필요로 하는 질환으로 인식되고 있다. 게다가 이전에는 없던 치료제까지 등장하면서 약을 찾는 환자들의 수가 늘어났다.
성인형 당뇨병, 고혈압 등의 증상이 급격히 늘어난 것도 약에 대한 수요와 의존도를 높였다.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 인터넷이다. 번거로운 의사와의 상담 대신 인터넷을 뒤져 그들이 이미 사용 중이거나 복용하려는 약품이 태아에게 안전한지 여부를 판단하려드는 임신부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추세다.
이제 인터넷은 만물박사다. 웬만한 정보는 인터넷 검색으로 간단하게 얻을 수 있다. 대단히 편리하긴 하지만 맹점이 있다.
질병통제예방센터의 체릴 브라우사드 박사는 조지아주립대,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연방식품의약국 등의 동료 학자 및 연구원들과 공동으로 인터넷을 뒤져 임신 중 복용해도 안전한 약품 리스트를 제시한 25개 웹사이트를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결과는 우려했던 그대로였다. 일관성 없는 것은 기본이고 위험한 약품에 ‘무해’ 딱지를 붙여준다든지 부적절한 증거에 바탕해 임신부에게 안전한 약품을 기피대상으로 분류한 사례 역시 적지 않았다.
브라우사드 박사는 “2000년에서 2010년 사이 미국에서 시판 승인을 얻은 의약품들 가운데 79% 이상은 선천성 기형 위험을 평가할 기준이 될 임상 보고서가 나오지 않았고 98%는 그런 위험을 특징지을 충분한 자료가 발표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5개 웹사이트는 245개 의약품을 “임신부에게도 안전하다”고 평가했다. 브라우사드 박사와 그의 동료들은 웹사이트에서 충분한 근거 없이 ‘안전’평가를 받은 약품들이 임신부들 사이에 남용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지금 꼭 먹어야 하는 약이 아니지만 “안전하다니까” 일단 복용해 두어도 나쁠 게 없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게다가 인터넷에 떠다니는 정보들은 서로 상충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브라우사드 박사의 조사에서도 한 개 이상의 사이트가 임신부에게 안전하다고 판정한 약품이 한 개 이상의 다른 사이트에서는 안전하지 못한 약품으로 분류된 사실이 밝혀졌다.
복용 시기에 따른 차이는 아예 무시된 것으로 드러났다. 예를 들어 임신 초기 태아의 장기 형성을 방해하는 약품은 그 시기가 지나면 안전하다. 반면 이부프로펜이 주성분인 약품은 임신 초기에는 안전하지만 후반에 복용하면 과다출혈 혹은 조산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
25개 사이트 가운데 절반 이하가 꼭 필요할 때만 복용할 것을 권한 반면 의사와의 상담을 거치라고 권장한 사이트는 13개에 불과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의사들도 다양한 의약품이 지니는 임신관련 위험을 잘 모른다는 점이다. 게다가 같은 증상을 치료하는 약품의 종류가 여러 가지인 경우도 흔하다.
의사의 입장에서도 임신부에게 약을 처방하는 것이 나은지 아닌지, 약을 쓴다면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따져보아야 할 사항이 수두룩하다. 우울증을 지닌 임신부를 치료할 때가 특히 고민스럽다.
앨버트 아인스타인 의과대학의 부인학 전문의인 시오브한 돌란 박사는 “한 가지 증상에 두 가지 이상의 약을 사용하는 임신부는 일단 이를 하나로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어떤 상황에서건 남의 약을 나눠 사용하는 것은 금물”이라고 강조했다.
증상이 비슷하다고 해서 다른 임신부의 처방약을 함께 복용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녀는 또 “자연성분”이라든지 “약초”라는 라벨이 붙은 것은 안전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라고 경고했다. 식품보조제는 전혀 안전성 검사를 거치지 않는다. 감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칫하다간 엄마의 건강을 지키려는 약이 태아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 임신부의 약 복용은 전문의와의 사전 상담이 필수적이다.
<뉴욕타임스 특약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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