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시 18세 루즈벨트 J. 클락, LA공항에 도착
▶ 1990년 북한서 발굴 DNA·유품으로 신원 확인
1950년 LA 북쪽 컨카운티의 베이 커스필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흑 인 소년 루즈벨트 J. 클락은 한국에서 전쟁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시 18세이던 클락은 자유를 수 호하기 위한 한국전쟁에 참전하기 위 해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군 입대를 했다.
당시 한국의 최전선에 투입된 클락은 그러나 그해 11월28일 혹한 이 밀려드는 동토의 땅 북한 지역 내 전투현장에서 작전 도중 실종되고 말 았다.
갓 미성년자를 벗어난 동안의 젊은 이였던 그는 이후 60년 넘게 유해조 차도 고향에 돌아오지 못한 채 실종 상태로 남아 있다가 63년 만에 결국 고향을 찾게 됐다.
27일 오전 하와이 에서 델타 항공편을 통해 고 루즈벨 트 J. 클락 일병의 유해가 LA 국제공 항(LAX) 계류장에 도착한 것이다. 클락 일병은 1950년 11월28일 실 종 당시 미군 제35 보병연대로 북한 지역까지 파병됐었다.
당시 제35 보병 연대는 중공군의 개입에 맞서 치열한 전투를 벌 인 것으로 알 려 졌 다. 실제 클락 일병이 실종 된 날로부 터 3일 후 에 중공군 은 북한 지 역을 장악 했다.
클락 일병 의 유해는 1990년대에 북한 지역에서 수습돼 미국과 북한 간 전사자 유해 인도절차에 따라 다 른 미군 유해 280구와 함께 1990년 대부터 미군 보관소에 머물러 있었다.
그동안 미군은 신원 미상의 유해에서 채취한 DNA와 유품으로 가족 찾기 에 나섰고, 마침내 20여년만에 클락 의 신원과 가족을 찾게 된 것이다. 26일 새벽 클락의 유해를 실은 관 이 도착하자 육군 의장대는 최고의 예의를 갖춰 그의 뒤늦은 귀향을 맞 이했다.
이날 LAX 현장에는 전쟁터로 떠나는 아들을 배웅하던 그의 어머니 는 6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난 후라 없 었고, 클락을 기억하는 사촌들만 자 리를 지켰다.
이제는 노년이 된 사촌 칼리나 마 틴은“ 어릴 적 우리는 같이 뛰놀고 즐 거운 시간을 보냈었다”며 “클락의 엄 마인 이모가 살아계실 때 그의 귀향 을 보았으면 정말 좋았을 것”이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마틴은 “클락이 실종된 뒤 그 가 정말 돌아올 수 있을까 반문했다”며 “(비록 그의 유해지만) 우리 가족은 이제 평안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 고 덧붙였다.
한편 고 루즈벨트 클락 일병의 장 례식은 3월1일 오전 11시 베이커스필 드 미셔너리 침례교회에서 거행된다. 그의 유해는 알링턴 국립묘지에 묻힐 수도 있었지만, 남은 친지들의 뜻에 따라 고향인 베이커스필드의 참전유 공자 공원묘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한편 한국전쟁 당시 미군 전사자는 약 3만4,000명에 달했다.
<김형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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