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칼럼
자신의 전공인 생물학보다는 소설 쓰는 것에 시간과 정성을 쏟은 P군은 대학 3학년때 책을 출간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조금씩 써왔던 글의 결실을 본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몇 권이나 팔아서 얼마나 벌었니. 이제라도 그런 짓 그만두고 우리가 원하고 너도 편하게 살 수 있는 직업을 갖도록 공부에 몰입해주면 안되겠니”라는 부모의 냉소적인 반응에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돈벌이 되는 직업을 강요하는 부모와 열정을 쫓는 자녀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은 시대적 변화를 감지하는 안테나 수신상태의 차이에서 빚어진다. 그것은 산업사회의 끝자락을 경험하며 19세기 사고방식을 지닌 부모와 21세기 글로벌 경쟁시대를 살아야 하는 학생의 갈등이다.
산업사회의 바람직한 인간상은 전문지식으로 숙련되고 생산성이 높은 효율적인 노동자였다. 이에 따라 학교는 전문 지식과 기술을 가르치는 것을 우선시했고, 그것을 전달받은 학생의 소화력 수준을 측정하여 등급을 매겼다. 자연스레, 수학ㆍ과학 등 왼쪽두뇌가 주도하는 학구적인 과목이 서열의 윗자리를 차지했고, 운동ㆍ미술ㆍ음악 등 오른쪽 뇌가 주도하는 과목들은 뒷자리로 밀렸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다. 산업사회의 대명사인 대량생산ㆍ가격경쟁ㆍ기술발전만으로는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세상으로 변했다. 집단화ㆍ객관화ㆍ 획일화를 통한 천편일률적인 산업사회 시스템이 무너지며, 이제 기업은 물론 정치ㆍ교육ㆍ경제 등 사회 전체가 “창의력, 창의력, 창의력”으로 아우성치고 있다.
인간의 다양하고 다변화된 욕구에 순발력 있게 대응할 수 있는 능력있는 인재를 절실히 요구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아직도 19세기에 걸 맞는 대중교육 시스템에 연연하고 있다. 창의력ㆍ모험심ㆍ진취성을 일깨우기보다 공부에만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투자대비 효용성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는 것이 학교 교육, 특히 대학 교육이다. 그런 교육제도에 익숙한 부모와 학생에게 창의성이라는 단어만 주입시킨다고 갑자기 우뇌 중심적 사고를 하게 될까. 갈릴레오의 희생이 천동설을 지동설로 변화시켰고,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개인을 탄생시켰고, 아인스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인간의 사고방식을 총체적으로 뒤흔들었듯이,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면 창의력 죽이는 사회에 마냥 머물게 된다.
제도적이고 물리적인 변화, 즉 교사와 학생 비율, 예능과목 필수화, 대학 입시제도 개혁, 수업방식, 평가방식 개선을 위한 노력도 필요하지만, 더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규정하는 가치관의 변화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창의적이다. 그렇지만 학교에 발을 디디면서부터 사회가 규정한 질서에 순응하는 법을 배워야 했고, 점차 하나의 부속품이 되는 삶에 익숙하도록 훈련되었다. 그런 과정에서 망각하거나 부인해야 하는 것이 바로 자신 속에서 꿈틀거리는 창의성이다. 현명한 부모는 자녀가 꿈틀거릴 수 있는 시간, 공간을 남겨둔다. “그 짓 해서 성공하겠니”, “쓸데없는 데 시간 낭비하지 마라”라는 말로 여백을 없애지 않는다.
사회는 빛의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관성과 타성에 젖은 사람은 그것을 감지하는 안테나 수신상태를 점검하지 않는다. 그 결과,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기회를 여러 번 놓치다 보면 도태와 퇴출이 따른다. 다행히도 P군은 그것을 감지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나의 부모가 한가지 사실을 모른다. 아무리 공부해라 목소리를 높여도 틈만 나면 나는 소설을 쓴다. 그리고 부모가 원하는 직업에 안착하여, 그들을 안심시킨 뒤, 다시 소설 쓰기에 전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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