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연의 고통이 단순한 감정적 통증으로 끝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가슴앓이는 종종 신체적 질환으로 연결된다.
남편의 차가 드라이브웨이를 빠져나가는 광경을 지켜보던 호프 라이징은 그 자리에서 배를 움켜쥐고 쓰러졌다. 남편이 그녀의 곁을 떠난 지난 3월의 일이었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결혼 7주년 기념일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갈라서기로 마음을 정한 남편은 매몰찼다. “떠나지 말아달라”고 눈물로 애원했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갑작스런 이혼·사별 후 엄청난 상실감에 빠져
가슴통증·편두통에 구토·설사 등 건강 악화
고립되지 말고 적극 심리상담 등 나서야 치유
그렇게 남편이 떠난 후 그녀는 침대에 몸져 누운 채 몇날 며칠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잠도 짐 가방을 싸들고 나간 남편처럼 그녀에게서 멀어져갔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 지독한 불면의 나날이 이어졌다.
라이징(47)은 “온종일 멍하니 누워서 벽이나 천장을 응시했다”며 “당시 나는 좀비와 다를 바 없었다”고 회고했다. 엄청난 상실감과 자책감이 그녀의 마음에 견디기 힘든 고문을 가했다.
그가 자신을 떠났다는 사실에 화가 치밀었지만 머릿속은 온통 남편을 떠나게 만든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어떻게 하면 그를 붙들 수 있었는지 하는 부질없는 생각뿐이었다.
뱃속은 장이 꼬인 듯 만성 통증에 시달렸고 편두통으로 머리는 깨질 듯이 아팠다.
단 두 달 만에 라이징의 체중은 60파운드 이상 줄었다. 첫 남편에게서 낳은 자녀들은 행여 엄마가 자살을 시도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라이징의 반응은 극적이긴 하지만 실연의 아픔이나 애끓는 슬픔은 종종 물리적 증상을 초래한다. 마음이 아프면 몸도 아플 수 있다는 얘기다.
뉴욕소재 몬테피오레 메디칼 센터의 심리학 교수인 사이먼 리고에 따르면 인체에는 갑작스런 스트레스의 충격에 반응하도록 만들어진 장치가 내장되어 있다.
까마득한 옛날, 날카로운 송곳니를 지닌 맹수들과 맞서야 했던 인류의 조상들로부터 유전자의 기억에 새겨져 시간의 벽을 뚫고 후대로 전해져 내려온 “싸움 혹은 도주(fight or flight)”라는 생존 반응은 지금도 신체적, 감정적 위협에 직면할 때마다 어김없이 작동된다.
이 반응은 물리적, 혹은 정서적 자극을 받을 경우 아드레날린이 대거 분비되면서 가동되기 시작한다.
위협에 직면하면 혈압이 상승하고 맥박이 빨리 뛰며 근육이 수축되고 소화기관의 기능이 둔화된다. 이 때문에 쥐가 나고 변비와 설사, 구역질, 구토 등이 일어나기도 한다.
라이징의 경우 며칠 동안 곡기를 끊었다. 도무지 음식을 넘길 수가 없었다. 자녀들의 강권으로 억지로 몇 숟갈 뜨고 나면 15분쯤 뒤에 어김없이 구역질이 치밀었다.
심리적, 감정적 고통의 효과를 연구한 미시간대 교수 에선 크로스는 “사회적 거부 경험은 육체적 아픔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라며 애인이나 배우자에게 퇴짜를 맞았다든지 가까운 사람을 떠나보냈을 때 느끼는 “슬픔이라는 고통”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고 누누이 강조한다.
실제로 스트레스가 유발하는 심근증은 정신적, 혹은 감정적 고통이 초래하는 질환으로 흔히 상심 증후군이라고 불리며 갑작스런 가슴통증이 대표적인 증상으로 꼽힌다. 이처럼 가슴이 뒤틀어지게 아프기 때문에 흔히들 심장마비로 착각하곤 한다.
물리적, 정신적 자극으로 스트레스 호르몬의 분비량이 급증하게 되면 이를 감당하기 위해 심장이 일시적으로 확대되면서 생기는 증상이다.
시간이 지나면 이런 증상은 저절로 사라지지만 그래도 의사를 찾아가 진찰을 받아 보는 게 좋다.
베버리 힐스의 정신상담 전문의인 캐롤 리러밴은 헤어짐이란 누군가를 신체적 질환에 취약한 상태로 빠뜨린다고 말했다.
라이징의 경우가 대표적 본보기에 속한다. 남편이 뒤 한번 돌아보지 않은 채 그녀의 삶에서 걸어나간 후 그녀의 심장은 한동안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뛰었다. 가슴 울렁증과 함께 월경불순이 시작됐다.
검사결과 그녀의 자궁에서 물혹이 발견됐다. 담당의사는 악성이 아니긴 하지만 수술로 제거해야할 필요가 있다며 아마도 스트레스가 유발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라이징은 수술을 받았으나 몸 상태가 호전되기 시작한 것은 심리상담을 받기 시작한 이후 수개월 뒤의 일이었다.
리고는 실연을 당했을 때나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작별했을 때 라이징처럼 스스로를 고립시킬 것이 아니라 가족과 친구, 혹은 전문 카운셀러를 만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한다.
사람 때문에 잃은 것은 결국 사람을 통해 되찾아야 한다. 그것이 마음의 상처를 가장 빨리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이다.
가급적 조속히 일상으로 되돌아가서 평소 즐기던 활동을 재개하는 것이 좋다.
라이징은 상담치료를 거쳐서 마음의 평정을 되찾았고, 그녀의 결혼에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인지 바라볼 수 있는 객관적인 거리를 확보했다.
그 단계에 도착하기 위해 라이징은 무려 6개월이라는 시간을 필요로 했다.
그녀는 옛 남자의 흔적이 짙게 배어 있는 집을 떠나 이사를 했다. 규칙적인 운동으로 건강을 다지고 온라인 지원그룹에 가입해 최근 이혼한 커플들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그녀는 자신과 비슷한 손실을 경험한 남녀를 지원하는 데에서 일종의 충만감을 느낀다고 털어놓았다.
라이징은 “카운슬링을 받으면서 나와 그이가 얼마나 서로에게 맞지 않는 사람이었는지를 깨달았다”고 말했다.
“단지 그 사람과 함께 있기 위해 너무도 많은 것을 포기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라이징은 “내가 좋아하던 모든 일들을 재발견해 가며 요즘 멋진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리고는 인생이란 늘 변치 않는 상수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의 지론에 따르면 인생이란 축복과 저주의 혼합물이다.
인생살이란 어느 순간엔가 사회 구성원 한명 한명에게 예외 없이 상실을 강요한다. 첫사랑은 대부분 빗나가고, 평생 보호막을 제공해 주던 부모님은 우리보다 한발 앞서 세상을 뜬다.
사랑을 만나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알콩달콩 살아가자는 신혼의 약속은 머리털이 반백이 되기도 전에 이혼으로 깨져나간다.
하지만 그게 인생의 조건이다.
리고는 “바닥으로 추락한 것만 같은 느낌이 들더라도 이제 사정이 개선될 것이라고 믿는 마음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라이징은 이런 견해에 100% 동의한다. Hope Rising이라는 자신의 이름처럼 그녀는 새로운 희망이 떠오르고 있음을 느낀다.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제목이 아니라 그녀가 가슴앓이를 거치면서 터득한 세상살이의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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