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년간 140여명에 희망
▶ 탈북난민들의 아버지
최근 탈북자 문제가 불거지면서 뉴욕에서도 ‘중국의 탈북자 강제북송 중단’ 촉구 결의대회가 열렸고 12일 북한의 광명성 3호 발사 규탄집회가 유엔대표부 건물 앞에서 열렸다. 탈북난민돕기음악회를 10년이상 해오며 문화예술운동을 펼치는 뉴욕예술가곡연구회 서병선 대표가 걸어온 길을 소개한다.
▲3일동안 눈물이 흘러내려
“첫 음악회가 기억난다. 바쁜 이민생활에 몇 명이나 음악회에 올까 걱정이 앞섰다. 최대한 좋은 노래를 들려드리자고 준비했는데 막상 공연날 ‘사람 살리는 일’이라고 다들 몰려와서 효신장로교회 강당이 넘쳐났다. 자리가 없어 돌아가는 분도 많았다. 그 이후 피나는 노력과 인내로 계속 해오고 있다.”
탈북난민돕기 음악회는 2000년부터 한국일보 후원으로 매년 봄가을 두차례씩 개최해오고 있다. 오는 5월 20일(일)에도 플러싱 JHS 189강당에서 제25회 탈북난민돕기 음악회가 열린다. 이 음악회에도 서병선(74) 뉴욕예술가곡연구회 회장은 무대에 직접 서서 독창 ‘은발’외에 중창에서 성가곡 등을 노래한다. 서병선의 음악회 동기는 무엇일까.
“2000년 1월 13일 윤성신이라는 40대초반 주부가 전화했다. 탈북자 현장에 다녀와서 현장 취재 비디오 상영을 하려한다. 그 자리에서 가곡을 좀 불러줄 수 있는지? 사례는 없다”는 전화였다.안그래도 무지개의 집, 심장병 어린이 돕기 등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던 그였다. “사례가 무슨 말이냐, 기꺼이 가겠다”고 하여 약속한 날 금강산 지하식당으로 가니 한인 100명이 모여 있었
다. 서병선은 가곡 두 곡을 부른 후 함께 비디오를 보았다. 철조망에 찢겨 상처가 나고 얼음이 박혀 퉁퉁 부은 다리에 양말도 없이 걷는 장면, 먹을 것이 없어 땅에 떨어진 국수가락을 집어먹는 탈북민들의 참상을 보고난 이후 3일동안 밤낮으로 눈물이 흘러내렸다고 한다.
이 비디오를 본 충격으로 “난민들 구출에 사용할 기금모금 음악회를 열자”는 결심이 선 그는 바로 그해 3월 25일 제1회 탈북난민돕기 음악회의 문을 열었다.이때 모인 8000달러 기금을 가슴에 찬 그는 중국을 오가며 10년간 사역해오는 남목사와 전도사 등 4명과 중국의 도문, 훈춘, 길림성, 흑룡강성 등을 찾아갔다.그들 역시 난민들을 돕는 것이 발각되면 중국 공안에 끌려갈 형편이지만 현장에 가보니 허름한 판잣집에 숨어있는 3명의 어린이들은 불안과 공포, 영양실조 상태이고 꽃제비들이 사는 비참한 현장을 지나면서 ‘계속 이 일을 할 것같다’는 예감이 들었다고 한다.
그동안 음악회에서 모인 기금은 맨하탄 32가 아씨시 성당 김기수 신부를 통해 탈북난민 구출에 사용되었고 8여년 전부터는 두리하나 USA를 통해 탈북자의 한국행을 돕는 단체 두리하나 선교회(대표 천기원 선교사)에 전달되고 있다.뜻있는 뉴욕 한인들의 동포애로 인해 혜택 받은 탈북인들은 140여명, 그들은 한국에 정착하거나 미국으로 왔고 현재 열심히 자신들의 꿈을 펼쳐가고 있다.
“2006년에는 6명이 뉴욕에 정착 했다. 뉴저지와 버지니아 지역에 살면서 간호사, 네일업 등의 직업을 갖고 결혼도 했다. 두리하나 USA에서 정기적으로 상담 하고 저녁도 사주고 운전도 해주곤 한다.”
▲문화예술운동을 펼치다
그런데 탈북난민을 돕는 서병선 본인은 정작 이북 출신이 아니며 그곳에 인척이 있는 것도 아니다. 서병선은 1938년 경기도 광주에서 3남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나 가난한 농가에서 숱하게 배를 곯았다. “배고픈 경험이 너무 절절해 탈북난민돕기는 배고픈 사람을 돕자는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했다. 어머니의 자식사랑이 지극했다. 길가에서 고구마도 팔고 찐 옥수수도 팔며 고등학교까지 졸
업시켰다.”어려서부터 목소리가 좋다고 언주초등과 은광중학교시절 소풍날이면 늘 불려나가 노래를 한 그는 경신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한 일은 야학당이다. 부모를 따라 논에 나가 일하느라 초등학교도 못가는 아이들을 위해 동네 사랑방에서 시작했으나 80명으로 늘자 마을근처 봉은사에서 공간을 빌려줬다.
“한글, 영어, 역사, 한문 등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저녁 2시간씩 가르쳤다. 공자, 페스탈로찌 에 대해 알려주고 일일일언(一日一言)으로 선각자들의 사상을 쉽게 풀이하여 가르쳤다.
”
20대 젊은 혈기에 시작한 야학당은 58년부터 60년까지 계속되었다.
“못배우고 싸우고 질시하던 마을 사람들이 크게 변해갔다. 야학의 영향으로 아름다운 마을이 되자 나자신 감동했다. 그때 인생관이 설정됐다”법관이 된 후 평생 야학당을 하자는 것. 그래서 산속 오두막에 집을 짓고 법학 공부를 시작했다. 그런데 정작 밤새워 읽은 책들은 슈바이처, 석가, 톨스토이 등으로 본인 인생이 예술의 길로 가게 만들었다. 3년간 사색의 시간을 보내고 군에 다녀온 다음 65년에야 서울음대에 들어간 것이다. 서울음대 3년을 마친 1969년 1월 시카고 아메리칸 컨서바토리 초청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시카고에 도착하여 낮에는 음대에서 공부하고 밤이면 풀타임으로 호텔 중국식당에서 8명의 접시닦기 매니저 일을 했다. 고되고 힘든 일로 침도 못넘길 정도로 고통스러운 일을 겪기도 했다.”그리고 그해 9월 뉴욕으로 갔고 다음해 3월 맨하탄 줄리아드 시험에 합격했다. 그때 나이가 32세. ‘줄리아드 역사상 최고 고령자’ 였다. 서병선은 79년, 81년, 83년 링컨센터 앨리스털리홀에서 독창회를 열어 뉴스데이로부터 ‘동방에서 온 빛나는 테너’라고 호평했다. ‘오페라를 제대로 알자’ 싶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태리 로저리 예술대학원 서머스쿨을 매년 3개월씩 2년간 6개월을 수료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오페라가 주로 폭력, 질투, 배반 등을 다루면서 비록 악인의 역을 하는 배우라도 노래를 잘 하면 박수를 받는데 대해 오페라의 해악을 느꼈다. 이에 서병선은 ‘격정적이고 난폭한 오페라, 정신문화 다 죽는다’는 기고문을 세계적 언론사 155군데에 보내자 뉴욕타임스가 기고문을 실어주기도 했다. 또 ‘소박, 정직, 사랑, 인내가 가곡의 속성’ 이라는 가곡보급운동을 펼치면서 94년에는 ‘가곡을 중고등학교에서 가르쳐 범죄에 시달린 미국을 구출하자’는 편지를 클린턴 대통령, 상원의원, 하원, 50개 주지사, 학교 교육감들에 보냈고 대부분 답장을 받았다. 그중 문교부 장관실에서는 편지를 카피해 스텝들에게 돌렸다며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2011년 구글에서는 ‘세계의 한국인’에 ‘가곡보급의 중요성 알리는 서병선’이라는 글이 올랐다.
“84년에 메트 스테이지 오디션을 통과하고 트레이닝 받으라는 전화를 받았지만 이미 오페라의 해악을 알았는데 어떻게 오페라의 길을 가겠는가, 부모한테 돈도 보내야 하는데 둥 여러 고민을 했지만 결국 하루 하루 진실되게 살자고 결론내렸다” 이래서 1986년 뉴욕예술가곡연구회가 성립되었고 김윤호 이사장이 여러모로 도움을 주었다. 세계명가곡집, 한국가곡집, 성가곡집 등도 출반됐다. “이 불경기에도 작년 10월2일 공연에 1만4,000달러가 모였다. 감사한 일이다”
서병선은 한인들과 이웃을 위한 문화사랑 운동도 열심히 한다. 1년에 한번 링컨센터 발레 ‘백조의 호수’, ‘잠자는 미녀’, ‘지젤’ 등을 단체관람 하는데 지난 ‘백조의 호수’는 한인 264명이 함께 보았다. ‘총기난사 사고에 폭력적인 미디어 등을 떠나 고귀한 예술문화를 감상하며 정서를 순화시킨다’는 목적으로 그는 사람을 모으고 직접 표를 구매한다. 그는 이 문화사랑운동을 자신이 사는 동네에서도 한다. 81년 결혼한 아내 서양희씨와의 사이에 딸 하나를 두고 맨하탄 200가에 사는 그는 동네 공원에서 26년동안 풀을 뽑는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작년에는 브로드웨이와 다이커만 스트릿에 걸쳐있는 포트트라이온 팍 북쪽입구 300미터 거리에 공원국 허락하에 개나리를 심었다. 그 개나리가 올해 샛노랗게 피어나 온동네 사람들의 기쁨이 되었다. 그의 소박하고도 다정다감한 면을 볼 수 있는 개나리꽃길을 만든 그에게 탈북난민을 계속 도울 것인가 하자 한마디로 말한다. “살아있는 한......”.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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