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선 (전 한인회 회장)
사람들이 나를 부르는 호칭은 참 다양하다. 몇 년 전 지역 한인 단체장을 지낸 짧은 이력으로 인해 이름 뒤에 아무개 회장으로 불리기도 하고, 비즈니스로 나를 아는 이들에게는 아무개 사장으로 불리기도 한다. 교회에 가면 세례명으로 불리우고 몇 명 되지 않는 미국인 지인들은 미국땅에 와서 생긴 영어 이름으로 친근하게 부르기도 한다.
거슬러 올라가면 누구의 아들로 수십 년을 살아왔지만 나보다 훨씬 큰 사회적 존재감으로, 그분의 아들로 불리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던 때이니, 지금의 논점에서 벗어나 있다. 또한 두 아이들을 키우며 누구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했으나, 지극히 한국적인 정서를 지닌 나로서는 자랑스러운 계급장이라고나 할까?
그렇게 세월이 흘러 내가 참여하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모임의 성격이나 마주하는 사람들에 따라 내 이름 뒤에 붙는 호칭이 달라짐에도 그때마다 난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여지껏 잘 살아왔다.그런데 얼마 전 그동안 맺은 인연으로 뿌리치지 못해 참석한 한 모임에서 어색한 경험을 한 일이 있은 후로, 난 내 이름 뒤에 붙는 호칭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대부분 낯익은 얼굴이었지만 못된 기억력을 지닌 나는 그들의 이름을 다 기억하지 못했다. 새로운 사람들도 소개를 받았는데, 소란한 분위기 탓에 귀를 세워 들은 이름 뒤의 직함이 모두 한결같이 ‘회장’이라고 했다. 물론 나를 소개한 사람도 나를 ‘아무개 회장’으로 소개 했으니 나 또한 그들의 무리 중 한 사람인 셈이었다. 여러가지 단체의 회장, 전회장, 전전회장, 전전전….어느새 모두가 서로를 ‘회장님’으로 극존칭을 써가며 어색한 악수를 나누는 우스운 상황이 되었다. 물론 그동안 모든 모임에서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던 일들이 왜 유독 그날따라 생경하게 느껴졌는지는 모르겠다.
그후 며칠이 지나 다른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 며칠 전의 모임보다 조용하고 서로 얼굴을 마주하며 얘기할 수 있는 편안한 자리였다. 간단한 회의가 끝나고 친교를 나누던 중에 무리 중 제일 젊은 사람이 옆에 앉아 있는 나를 ‘아무개 씨’ 하고 아무렇지 않게 이름을 부르며 과일을 권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 사이에 어색한 정적이 흐르고, 내 눈치를 살피던 분위기 탓에 아무렇지 않은 척 그 순간을 넘겼지만 모임이 끝날 때가지 불편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참으로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나 또한 내 이름 뒤에 어떤 호칭을 붙여야 할지, 아니 어떤 이름으로 불리고 싶은지 몰라 당황하고 있었다.현직 회장도 아닌 나에게 붙는 ‘회장’이란 직함도 어색하고, 나이 어린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부르는 ‘아무개 씨’ 또한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여서, 새삼스레 호칭이 주는 의미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니 모든 직함이 빠진 나는 어디에도 없는 것 같았다. 아버지의 아들로, 아이들의 아버지로, 한 사람의 남편으로, 내 생활을 지탱해온 직업인으로…. 또 소박한 사회인으로 살며,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이름 뒤에 붙어있는 호칭이나 직함에 충실하도록 강요받으며 산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의 내 이름 뒤에 붙는 어떤 호칭도 현재의 내 모습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어서나 자신에게 부끄럽다. 우리 모두 그동안 비겁하게 이름 뒤에 붙은 수많은 타이틀 뒤에 숨어 스스로를 애써 외면하며 살지는 않았는지, 모든 호칭과 직함이 빠진 내가 누구임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고 있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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