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갑헌 (맨체스터대학 철학교수)
아침에 집을 나서는데 지나가던 차가 서더니 한 중년의 남자가 차에서 내렸다. 길 옆과 가운데에 떨어져 있는 맥주 캔과 쓰레기를 줍고 갈 길을 갔다. 이른 아침에 재생 쓰레기를 수거하는 사람들이 떨어뜨리고 간 쓰레기인 것 같았다. 한국차 에쿠스를 샀다고 자랑하러 왔던 몇 집 건너에 사는 바로 그 사람이었다.
한국의 경제가 발전하고 국민의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외국으로 여행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세계 어느 곳에 가도 한국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터키 같은 곳은 시골 식당에도 농심라면 값을 한글로 써놓고 있었다. 그 만큼 한국의 국가적 위상도 높아졌다는 뜻 이다. 자랑스럽고 기쁜 일 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국가의 위상만큼 한국 사람의 위상도 높아졌는 지 의문이 생길 때도 가끔 있다. 스페인 그라나다에 갔을 때의 일 이다. 알함브라 궁전에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소란한 소리가 들리더니 한 무리의 동양인이 관광 안내인과 나타났다. 남자들은 모두 골프 모자를 쓰고 여자들은 채양이 길고 둥근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많은 수의 여자들이 두 눈만 보이는 흰 가면 같은 것을 쓰고 있었다. 마치 일본 전통극 가부끼에 나오는 모습 같았다. 일본 사람? 아니, 한국사람들이었다. 햇볕에 얼굴이 탈까봐 저런 것을 쓰고 다닌다는 것이 아내의 설명이었다. 알함브라 안에서도 사정은 별로 다르지 않았다. 앞에서는 안내인이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은 소란스럽게 떠들거나 사
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북구에서 온 듯한 관광객들이 이들을 피해가는라 고생하고 있었다.
이들을 보면서 무엇이 사람들을 일등 국민으로 만드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나는 우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정신이 바로 일등 국민의 자격이라고 생각한다. 관광지에서 소란한 사람들을 보면 한국인 아니면 중국인이라는 서양인들의 편견은 사실 편견이라고 보기 어렵다. 실제로 소란하기 때문이다. 공공장소에서 조용히 한다거나, 금연 구역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는 일, 뒤에 들어오는 사람을 위해 잠깐 문을 잡아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정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 아닌가?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사람은 양보를 할 줄 안다. 그런 정신을 가진 사람은 봉사하기를 즐거워 한다. 권리를 주장하기 전에 자기의 책임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넘치는 나라가 일류 국가요 그 국민을 일등 국민이라 부를 수 있을 것 이다.
삼성이 소니를 능가했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 이다. 그러나 공공장소에서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나 양보의 정신은 아직도 한국 사람이 일본 사람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아침에 쓰레기를 줍던 그 사람이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하다가 인사를 했다. 쓰레기를 치워주어 고맙다고 했더니,자기 가족의 이 번 달 봉사활동은 우리가 사는 길 위에 떨어져 있는 쓰레기를 치우는 것이라며 수줍은 웃음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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