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이병철회장은 세상을 떠나기 전 기독교와 신에 대해 본인이 평소 궁금해 하던 점을 질문서로 꾸며 서울 절두산 성당의 박희봉신부에게 보낸 모양이다. 그러나 박 신부가 이 질문서에 답변해줄 신부를 찾던 중 이회장이 세상을 떠났다. 이회장은 결국 답변을 받아보지 못했다. 이 질문서는 “신의 존재는 어떻게 증명될 수 있나”를 시작으로 “영혼이란 무엇인가” “신앙이 없어도 그리고 악인도 부귀를 누리는데 대한 신의 교훈은 무엇인가” “신부와 수녀는 왜 독신인가”등등 24개의 질문으로 꾸며져 있다.
최근 자기계발서 ‘무지개 원리’로 널리 알려진 차동엽 신부가 고 이병철회장의 질문에 대한 가톨릭 입장에서의 답변을 책으로 내놓아 화제다. ‘잊혀진 질문’이라는 이 저서는 이회장의 질문에 답하면서 기독교가 어떤 종교인가를 광범하게 설명하고 있다.
나의 관심을 끄는 이회장의 질문은 다섯 번 째의 “신이 인간을 사랑한다면 왜 고통과 불행을 주었는가”하는 부분이다. 왜냐하면 나도 그런 의문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특히 몇 년 전 폴란드에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개스실을 둘러보는 순간 “이들이 숨져가면서 하느님에게 애타는 기도를 했을텐 데 하느님은 왜 침묵을 지켰을까”라는 의문이 줄곧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차동엽신부는 “고통은 신의 조화가 아니라 자연현상이며 그 결과가 고통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고통의 책임을 신에게 돌리는데 그것은 3차원 공간을 사는 존재들이 부대끼면서 겪는 자연발생적 현상이며 신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라고 ‘잊혀진 질문’에서 대답하고 있다. “왜 전능하신 신이 내 고통을 막아주지 않는가”라는 생각은 신을 잘못 해석하는 것이라고 한다. 인간이 고통 속으로 들어가면 오히려 하느님을 만나기 때문에 그곳에서 사랑을 발견하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고통 속에 하느님이 함께 있다는 뜻이다.
하느님은 왜 침묵하고 있는가에 대한 답으로는 엔도 슈사쿠의 ‘침묵’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아쿠다가와 상을 수상한 엔도 슈사쿠는 일본의 대표적 문인으로 노벨상후보에도 여러번 오른 적 있다. 17세기 일본의 기독교 박해를 그린 ‘침묵’의 스토리는 이렇다.
포르투갈의 로드리고신부는 자신의 멘토인 페레이라신부가 배교했다는 소문을 듣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일본에 잠입했으나 체포된다. 그는 ‘후미에’(예수의 얼굴이 그려진 성화를 밟고 지나가는 의식)와 배교를 강요 받으며 갈등한다. 배교하면 하느님을 믿는 농부와 아낙네들을 끓는 물에 넣어 죽이는 처형을 하지 않고 살려주겠다는 최후통첩에 직면한다. 그는 성직자가 지켜야할 도리와 신자들을 살려야하는 의무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성화에 발을 얹는다. 그 순간 성화에 그려진 얼굴(예수)로부터 다음과 같은 목소리를 듣는다.
“밟아도 좋다. 나는 너희들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너희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진 것이다”
로드리고 신부는 하느님이 고통의 순간 어디에 있는 가의 답을 얻는다. 하느님은 침묵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함께 아파하고 고통을 나누며 울부짖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침묵’은 지난달 한국에서도 연극무대에 올려 졌으며 미국에서도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로 곧 선보일 예정이다. 너무나 안일한 자세로 교회에 나가고 있는 이 시대의 기독교인들에게 엔도 슈사쿠의 ‘침묵’이 전하는 메시지는 매우 감동적이다.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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