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조 중종 때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은 한반도의 지리와 각도의 민속풍습을 담은 책(55권)이다. 6권의 경기도 편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형제가 길을 가다 동생이 금덩어리 2개를 발견했다. 그는 얼른 주워 하나를 형에게 주었다. 그리고는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데 동생이 형을 한참 쳐다보더니 자기가 갖고 있던 금덩어리를 강물에 던져버리는 것이 아닌가. 놀란 형이 너 미쳤느냐고 나무라자 동생이 이렇게 대답했다.
“형님, 금덩어리를 갖고 보니 형님에게 준 것이 후회되고 다시 뺏어 오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런 더러운 마음을 지우기 위해 금덩어리를 던져 버린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형은 동생의 사려 깊은 형제애에 감복하며 “너의 말이 맞다”고 말한 후 자신도 갖고 있던 금덩어리를 강에 던져 버렸다.
최근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남인 이맹희(81)씨가 동생인 이건희(70)
삼성전자회장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아버지 생전에 제3자 명의로 신탁한 주식을 이건희 회장이 형제들에게 알리지 않고 단독명의로 변경해 이에 걸맞은 재산분배가 다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내용으로 7100억원대 주식반환 소송이다. 한비 밀수사건을 계기로 시작된 삼성가문의 진통이 겉으로 살짝 봉합된 채 활화산 상태로 유지되어오다 45년만에 드디어 터진 것이다.
오래전에 이병철 회장과 친분이 있던 어떤 기업인에게서 나는 박정희 대통령과 이병철 회장이 아들문제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내용은 이렇다. 안양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면서 이회장이 박대통령에게 “지만 군이 어른이 다되어 이제 각하께서도 마음 든든하시겠습니다”라고 말하자 박대통령은 “저는 아들을 세명이나 둔 이회장님이 부럽습니다. 삼성을 이을 재목이 3명이나 되니 얼마나 든든하십니까. 지만이는 외아들인데다 내가 물려줄 재산이 별로 없어서 좀 미안 합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이회장이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자식들에게 물려줄 재산이 많으면 형제애가 없어지고 서로 싸우게 됩니다. 이것이 저의 고민입니다. 자식들에게 절대 재산을 많이 물려주지 마십시오”라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요즘 이맹희씨의 고소사건을 보면서 이병철 회장의 우려가 어떤 것이었는지 이해가 된다.
한국 재벌들의 대부분이 창업주가 세상을 떠난 후 ‘형제의 난’을 겪고 있다. 두산의 경우 그룹회장직 계승을 둘러싸고 박용오 회장이 회사탈세를 검찰에 고발하는 등 소란을 피우다가 가문에서 제명된 후 스트레스를 못 이겨 자살하기에 이르렀고 현대그룹도 고 정주영 회장이 5남인 정몽헌 회장을 후계자로 지목하려하자 차남인 정몽구 회장이 반발하여 현대그룹이 쪼개졌다. 최근에는 금호아시아나 그룹이 M&A로 박삼구 회장과 박찬구 회장이 불화를 겪다가 비자금 조성을 폭로해 박찬구 회장이 불구속 기소되는 아픔을 겪었다. 재벌들 중에 가장 모범적인 형제애를 보이고 있는 그룹은 LG다.
부자가 행복해지는 것은 남이 자기를 부러워 할 때다. 따라서 부자들은 많이 가졌는데도 부족감을 느끼는 체질적 결핍증을 병으로 지니고 있다.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느냐인데 소유하는 것에만 가치관을 두다보면 많이 가질수록 욕망의 노예가 되기 마련이다. 우리 속담에 ‘돈 벌면 형제 잃고 권력 잡으면 친구 잃는다’라는 말이 있다. 또 서양속담에는 ‘재벌은 형제가 원수고 권력은 측근이 원수’라는 말이 있다. 이 속담들이 요즘 실감나게 느껴진다.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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