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대 씨
조용히 북한의 어린아이들 생각하며 털모자를 뜨고 있는 따듯한 손이 있다. 화이트 플레인즈에 거주하고 있는 임병대 씨는 털모자를 떠서 북한 고아원에 보내고 있다.
개인적으로 친분있는 사람들이나 교회 여선교회 들을 통해 모자나 털실 등을 도네이션 받기도 하면서 작년 초부터 뜨기 시작한 모자가 250개 넘는다. 그 중 140개를 지난해 10월 북한 방문가는 인편을 통해 보냈다. “저는 한번도 북한에 가보지 않았습니다.” 라고 말하는 그는 80년대 부터 줄기차게 남북통
일에 관한 일을 하고 있는 함성국 목사의 사모이다. 의례히 몇 번은 북한엘 다녀왔을 줄 알았다가 놀라는 기자에게 임 씨는 북한에 가는 교통비가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차라리 그 돈을 북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에 쓰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미국이나 한국에서 북경에 들러서 북한에 가는 교통비를 따져보니 1000달러나 더 든다면서, “우리가 판문점에서 버스를 타고 갈 수만 있다면 정말 큰 돈을 절약하게 되는 거지요.” 안타깝다고 말한다. 그냥 사서 보내도 될 모자를 일일히 하나씩 뜨는 데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온 얼굴을 가릴수있으면서 또한 입만 내놓던지 간단히 모자로서만 쓸 수도 있도록 기능적으로 만들어진 모자는 세계 각국의 국기를 디자인해서 뜨기 때문이다. 한국 국기처럼 복잡한 디자인도 있지만 대부분 국기들이 직선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뜨게질 하기가 가능하다. 거기에 덫 붙여 임 씨는 또 하나 간곡한 메시지를 전한다. 모자 하나하나 마다 그 속에 작은 종이 국기를 붙인 메시지를 넣는다.
< 이 모자에는 이나라 국기의 색갈이 들어있다. 이 모자를 쓸때 마다 이 국기의 나라를 생각해보라. 이 나라에 대해 배우고 이나라와 친구가 되라. 형제자매처럼 서로 사랑하는 친구가 되도록 생각하라. 그리하면 이 세상 전체의 나라들이 서로 사랑하는 친구가 되어 세계 평화를 가져오고 평화로운 일생을 살게 되기를 기원 하노라.>임병대 씨가 함성국 목사와 결혼하게 된 것은 1950년대, 서울 충신교회 성가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액 장학금을 받고 유학을 갈 준비를 하던 임 씨는 성가대 지휘를 하다가 유학을 간 함성국 씨와 연락을 하게 되면서 결국 결혼으로 이어진 것이다. 결혼과 동시에 남편이 미국교회에 시무를 하게 되었고 그 후 70년대 한국의 대모가 한창이던 때 연세대학 대학원장직을,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서 ‘미국 연합감리교회 세계선교부 아세아 태평양지역 총무’, ‘미국교회 협의회 인권위원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살벌한 남북한 관계 한 가운데에서 활동해 온 목사의 사모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워낙 남다른 손재주가 있으며 모든 일에 다재다능한 임 씨는 1남 2녀를 키우면서, 80년대 초부터 시작한 법정통역관 일을 아직도 하고 있다. 4명의 손자를 둔 요즈음도 통역을 위해 오고가는 시간과 법정에서 기다리는 시간마다 뜨게질을 한다. 한국의 날씨가 춥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한겨울엔 콧물도 고드름이 된다는 북한의 아이들을 생각하며 더욱더 빠른 손놀림으로 털모자를 뜬다.
올 10월에도 북한으로 친족방문가는 사람들 가방에 꾹꾹 눌러 보내려고 하는 털모자 뜨기에 동참하고 싶은 따스한 손길을 기다린다. (914) 761-0540
노려 지국장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