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과와 수산업은 새벽을 여는 업종의 대명사다. 헌츠포인트의 청과시장과 뉴풀턴 피시 마켓의 분위기는 예전처럼 활기차고 분주했다. 남들이 자고 있을 시간에 일어나 시장에 나와 동이 트기도 전에 장을 마치고 또 다시 바쁜 하루를 준비하는 한인들을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대표적인 한인 비즈니스로서의 위상을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는 두 업종은 최근 들어 조금씩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수산업이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업종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반면 청과와 델리는 조금씩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해를 여는 각오와 희망은 여전하다.
■ 청과시장
새벽시장서 만난 최고령 청과인 김창하씨
시금치 박스를 카트에 싣고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김창하씨는 수백명의 상인들과 직원들이 쉴새없이 움직이고 있는 청과시장에서 누가 봐도 가장 나이가 많은 노인이었다. 1935년생이니 곧 77세가 된다. 사진을 찍으며 웃어달라고 부탁을 했지만 얼굴이 쉽게 펴지지 않는다. 몸이 고된 것도 있지만 마음이 무겁기 때문이란다.
김씨는 몸이 갑자기 불편해진 아들을 대신해 아주 오랜만에 장을 보러 나온 것이다. 그나마 이날은 카트를 가져와서 조금씩 옮길 수가 있었지만 전날은 카트를 준비 못해 일일이 박스를 손으로 날랐다고 했다. 그는 “참 힘들고 고된 일이야”라는 말을 반복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노인의 마음을 가장 무겁게 하는 것은 아들이 운영하는 업소가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30년전 맨하탄 청과업소의 점원으로 이민 생활을 시작했다. 한인 청과업이 번성하던 시설, 성실함만으로도 충분히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던 80~90년대를 거치며 아스토리아에 자신의 업소를 차렸다. 아들이 가업을 물려받고 은퇴한 노인으로 편안한 여생을 보내고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청과업이 예전만하지 못한 처지에서 다시 새벽시장에 나와 아들을 도와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김씨의 아들처럼 힘든 일을 기꺼이 물려받아 아버지 세대 못지않게 열심히 일하고 있는 젊은 한인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청과업의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1세대 청과인들이 아직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고 노구를 이끌고 시장에 나온 김씨처럼 여전히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하는 원로 청과인이 있으니 말이다.
다친 아들을 대신해 새벽 시장에 나온 76세의 김창하씨는 30년전 청과업을 시작했다.
■ 수산시장
헌츠포인트 새벽여는 한인들
한여름에도 두꺼운 점퍼를 거치지 않으면 한기를 느끼는 곳이 수산시장이다. 살아서 펄쩍펄쩍 움직일 것 같은 싱싱한 각종 생선들과 비릿한 냄새가 다른 곳에서 느낄 수 없는 특별한 활력을 주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곳에서 가장 큰 바이어들은 여전히 한인 수산인들이다. 이곳에서 만난 수산인들은 대부분 수산업이 어느 업종보다 안정적으로 지속될 것이라는 낙관을 생각을 갖고 있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생선은 현재 공급과 판매가 이루어지는 방식, 즉 도매상에서 구입해 주택가 소매상을 통해 판매되는 형식을 유지할 것이라는 것이다. 신선함이 생명인 생선은 매일 새로 공급받는 활어가 냉동과 비교가 안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업종과 달리 월마트와 약국, 수퍼 등 이른바 메가스토어의 영향을 가장 적게 받기도 한다.
곽호수 수산인협회장은 “물론 중국인 등 타인종이 조금씩 잠식하고 있지만 한인들은 분명 다른 노하우가 있다”고 강조했다. 네일과 마찬가지로 생선을 보고 고르는 눈, 손실하는 감각 등이 이 남다르다. 등 신선도, 보관, 종업원관리 등 오랜 노하우가 있다고 강조했다. 더욱 고무적인 것은 미국인들에게 아직 생선이 주식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앞장서 캠페인을 벌이고 있지만 건강에 좋은 생선은 더욱 미국인들의 식탁에 자주 오를 것이다.
“사람들은 생선을 먹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싱싱한 생선을 원한다”고 수산인들은 입을 모은다. 그리고 이날 시장에서 만난 한인들이 매일 이렇게 새벽에 나와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95년부터 브루클린에서 수산업을 하고 있는 김치구씨가 주의깊게 생선을 고르고 있다.
<박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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