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차 한잔의 초대- 퀸즈장로교회 장영춘 목사
초창기 한인사회의 신앙 불모지대에 한인교회를 개척하고 잘 일궈내 든든한 반석 위에 올린 퀸즈장로교회 장영춘 목사, 그는 말한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그리고 지난 11일에는 퀸즈장로교회 2대 박규성 담임목사 위임예배가 있었다. 장영춘 목사의 성역 52년을 들어본다.
“나는 명석하지도 않고 말을 잘하는 사람도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섬기는 목회를 하려했다.”며 미주한인예수교 장로회 퀸즈장로교회의 주보를 보여주는 장영춘 목사, 그가 38년간 목회하며 목표로 삼은 주제가 거기에 있다.
“말씀충만, 기도충만, 성령충만, 사랑충만을 30년동안 하다가 하나님, 예수님, 부모, 이웃, 국가에 감사하는 감사충만을 그 이후 넣었다. 예수님 승천이후 오늘 우리가 사는 시대는 성령시대이다. 성령이 충만하면 사랑도 일어나고 기적, 능력도 일어난다. ”수많은 이민자들에게 믿음을 갖게 하여 평생 하나님이란 든든한 백을 갖게 한 것은 장목사가 전 교인을 대상으로 성경공부를 시키고 성경암송대회를 하는 등 초창기부터 강하게 이끌어간 리더십 덕분이다.
하지만 장목사는 지역사회, 전 미국은 물론 세계로 향한 선교로 인정받은 오늘날 퀸즈장로교회의 성장의 공을 초창기 교인들에게 돌린다.
“세든 지하건물에서 예배 보며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 1년, 고린도전서 1년, 고린도후서 1년, 히브리서 1년 등으로 강의했다.
2년이 지나자 놀던 젊은이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강의가 끝날 때마다 한 교인은 목사님, 저 요한계시록 다 외웠어요, 고린도전서 다 외웠어요 하더라. 그런 교인들이 있어서 교회가 성장했다”72년 6월 뉴저지 장로교회는 7명의 가정예배로 시작되었고 1년만에 교인이 200명이 되자 어느 목사가 ‘뉴욕의 기적’이라 했다.
브루클린 지역에서도 예배를 드려달라는 청이 왔고 이후 이곳은 우드사이드로 옮겨왔다. 결국 두 곳이 화합하여 플러싱 루터란 교회를 빌려 74년 2월 24일 ‘새찬송가 쓰는 퀸즈장로교회’로 창립예배를 올렸다.
“목회를 하다보면 새벽기도, 부흥회 등 장소가 중요하다. 81년 플러싱 프랭클린 지역에 땅을 사고 83년 이민교회 최초로 자체 건물을 짓기 시작하면서 많은 핍박을 받았다. 같은 목사들도 교인들 고생시킨다, 교인들 빠져나간다며 반대했다. 그런데 교회 짓기 시작할 때 250명이던 신자가 1년 반만에 450명으로 늘었다”이 비결이 무엇일까.
“건축위원을 따로 선정하지 않았다. 모든 교인이 건축위원이 되었다. 당시 장로회 본부에서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우리 힘으로 기도해서 푼돈모아 하겠다고 거절했다. 여전도회장이 중심이 되어 봄가을로 바자를 하면서 온 교인이 사력을 다했다” 그렇게 합심하여 벽돌 한 장씩 올린 교회는 83년 2월 27일 입당예배를 드렸고 10년후 증축하여 현재 교육관의 80~90개방이 이모저모 요긴하게 사용되고 있다.
급성장한 교회는 현재 등록교인 5,000명, 매주 3,000명이상 4부 예배를 보고 있다. “교회를 지으면서 2년반동안 산으로 금식기도를 하러갔다. 월요일 오전에 출발하여 수요일 오전까지 기도하면서 주말에 할 설교를 다듬었다. 목사부터 전 교인이 돌아가며 618일동안 금식기도를 했다.”
교회가 지어지는 동안 장목사 가정은 파슨스 35애비뉴 지하방에서 살았다. 소나기가 오면 화장실의 변기가 넘쳐서 카페트가 다 젖었지만 최소한의 생활비만 남기고 하나님께 드리며 앞장을 섰고 교인들과 고통 분담을 했다.
교회가 지어지고도 2년을 그곳에서 살아 후유증으로 장목사에게 병이 생기고 아이들도 습기 앨러지가 생기자 11년만에 지하에서 현재의 베이사이드 집으로 이사를 갔다.
또 하나 퀸즈장로교회가 달성해낸 것이 있다. 78년 헨델의 메시아 전곡 연주다.“성탄절에 교회 안나오고 놀러가는 사람이 많았다. 교인이 250명 정도인 시절이었는데 고등부와 성인 100명을 선정, 6월달부터 매주 가사를 외우게 했다. 1,100석 맨하탄음대 강당에 10달러 티켓을 사든 1,500명이 몰려 복도까지 신문지를 깔고 앉아서 공연을 보았다.
필라순회공연도 가고 다음해에는 더 큰 퀸즈칼리지 강당에서 공연했다”철저한 교육과 철저한 예배, 기도가 신앙심을 돈독하게 하고 교회의 부흥에 일조한 것이다.
“음악을 하진 못해도 듣는 귀는 있다. 내년 6월 파리에서 열리는 장로교회집회에 가서 한달간 있으며 오페라를 보려한다. 지난 10월에는 LA할리웃볼에서 피아니스트 랑랑의 연주를 들었다”이번에 원로목사로 추대된 장목사는 미주크리스천 신문 발행인, 동부개혁장로회 신학교 학장, 교회의 해외선교는 여전히 맡아서 한다.
도미니카 공화국, 아프리카 우간다, 모스크바, 중국 선교 등은 물론 카자흐스트 선교는 내년 6월이면 20년이 된다. 수준높은 교수진에 최고 신학교로 소문난 동부개혁장로회 신학교는 지금까지 수백명의 목사, 전도사, 사모를 배출했다. 미주크리스천 신문은 현재 30여개국 기독교인에게 선교 및 기독교 소식을 전한다.
▲고난당할 때는 기도로
1936년 11월 23일 황해도 장연군에서 장덕선 장로의 9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모태신앙으로 철저한 신앙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중학생 시절 6.25가 나고 인민군을 피해 산에서 숨어지내다가 1.4후퇴시 남하했다.
살면서 여러 고비가 있었지만 장영춘 목사는 그 중 잊지못할 일이 있다.
“첫째는 6.25 당시 산에서 숨어지낼 때 굶주림과 위기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살려주신 것, 둘째는 동생(장성춘, 전 안암제일교회 담임목사)과 단둘이 군산항으로 피난 와서 1년반동안 담요 2장 들고 개울가에서 살던 시절, 막노동하면서도 공부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이후 박일성 여자전도사의 양아들이 되고 윤두혁 목사는 마산 창신고등학교에 입학시켜주었다. 장로회신학대를 졸업하고 전도사가 되었으며 박형룡 목사는 미국 유학길을 열어주었다.”‘고난을 당할 때마다 기도를 가장 많이 했다’는 장목사다.
68년 1월 합동교단의 보수성을 유지하는 학교인 미네소타주 미네아폴리스 센트럴 신학교를 졸업하고 74년 미국장로교회로 들어갔다.
그리고 ‘공부한 후 한국 나가 달동네에서 기독학교를 세우는’ 원래의 꿈을 접고 그의 발길은 “뉴욕에서 모범적인 장로교회를 만들겠다”는 꿈과 함께 우리 한인들을 만나게 되었다.
과거 이야기를 하면서 연도, 날짜, 횟수, 만난 사람의 이름과 경력까지 좔좔 외우는 장목사의 기억력은 대단하다.
사모 김미은씨에게 한 약속도 확실하게 지켰다. 이대 출신으로 장학금 받고 미국에 유학왔으나 어려운 가정형편에 처하자 ‘목사 사모면 족하다’고 공부를 중도 포기한 사모, 그는 ‘내가 빚진 것 나중에 갚겠다’고 했었다.
이후 장목사는 과거 자신이 은혜 입었던 것처럼 가난한 목회자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고자 동부개혁장로회 신학교를 세웠고 사모 김미은씨는 1회 졸업생이 되었다. 현재 김미은씨는 이 학교의 헬라어 교수이다. 아들은 웨스트민스터에서 신학을 전공,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고 두 딸은 좋은 크리스천으로 ‘쓰임받는 일꾼’이다.
“내년 4월17일 한국금란교회에서 열리는 제27회 세계한인목회자 및 평신도 세미나의 강사진들을 섭외하느라 새벽 3시까지 통화했다”는 장영춘 목사, 아직도 밤새워 일하는 열정이 대단하다. 그동안 대뉴욕지구교회협의장, 미주한인장로회 총회장, 미국복음주의연합회 회장 등 한인사회는 물론 미국 교계에서 한 일도 많지만 아직도 할 일이 많은 장영춘 목사는 한인사회 교인들에게 일러준다.
“성실하게 하나님 믿고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한다기보다는 내가 누군가 정체성을 찾는 게 중요하다. 바른 크리스천이 되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가 나온다.” 빌립보서 4장 13절의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그가 평생 지키고 살아온 삶을 보여주고 있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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