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세 밖에 안된 청년 김정은이 북한을 통치한다? 그것도 정치수업 15개월만이다. 어떻게 김일성 왕조가 3대에 걸쳐 60년이나 넘게 계속될 수 있을까. 독재자로서는 세계 유례없는 기록이다. 게다가 중국이 정치 무경험의 이 청년을 지지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히고 클린턴 미 국무장관마저 “북한의 평화적이고 안정적인 전환을 원한다”고 밝혔다. 강대국들이 모두 김정은 체제를 인정하고 나오니 북한에 소요가 일어날 가능성은 그만큼 희박하다.

두 번째 불가사의 한 것은 세계 국방력 4위를 자처하는 나라에서 병정놀이도 아닌데 어떻게 28세의 청년을 대장으로 모신 다음 그를 위해 충성을 다하자는 운동까지 벌이고 있을까. 군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독재자가 세상을 떠나면 군이 계엄령을 선포하고 정권을 잡는 법인데 기라성 같은 노병들이 오히려 이 청년을 받들고 있으니 판단이 흐려진다.

세 번째 불가사의는 김정일의 사망소식을 듣고 통곡하는 북한 여성들의 모습이다. 김일성 주석 사망 때 인민들이 통곡한 것은 이해가 간다. 김일성은 북한의 건국의 아버지고 잿더미에서 다시 북한을 일으킨 사람이다. 그러나 김정일은 호의호식한 2세인데다 북한을 굶주림에 빠트리고 통화개혁에도 실패한 인물이다. 그런데 그가 세상을 떠난 것이 왜 슬픈가.

김정일의 죽음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를 깨우쳐주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의 북한 판단이 잘못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오판이다. 우선 3대에 걸쳐 독재정권이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 증명 되었다. 지금까지 외부에서는 김정일에서 김일성 왕조가 끝나는 줄 알았다. 왜냐하면 김정일의 아들이 너무 젊었고 정치수업을 받을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정일은 젊은 아들 김정은에게 대장 계급장을 달아준 후 노병들을 정리하고 그를 중국과 러시아로 데리고 다니며 후계자가 될 경우 잘 부탁한다는 정지작업까지 재빨리 해 놓았다. 김정일이 죽었는데도 인민들이나 북한군에 동요기색이 없다. 왜냐. 선군정치의 최대 수혜자가 군이며 독재 동업자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미국과 중국이 북한의 현 체제 붕괴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한국은 이 말도 안 되는 김정은 체제를 인정하는 수밖에 없다. 북한의 붕괴를 원하면서 북한의 안정을 원하는 이율배반적인 현실에 처해 있다. 군이 김정은을 받드는 것은 ‘김일성의 손자’라는 신성성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 같다. 김일성의 신성함은 북한 헌법 전문에 명시되어 있다. 그리고 김정일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미국과 맞서 싸운 영웅이며 핵을 개발하여 북한을 지켜낸 위대한 지도자라는 것이다.

북한에서 김일성은 우상이다. 김정일의 통치도 그가 김일성의 아들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제 아무 경험도 없는 김일성의 손자가 통치자로 등장한데 대해 북한인민과 군은 ‘김일성 수령에 대한 유지를 받들기 위해’라는 명분과 함께 의리 비슷한 정서를 지니고 있다. 김정은이 할아버지인 김일성을 꼭 빼어 닮게 꾸미고 다니는 데에는 정권 차원의 이유가 있다고 본다. “아휴, 저 불쌍한 것, 위대한 김일성 수령을 위해 우리가 도와야지”하는 국민감정이 일어나도록 주도면밀하게 짜여진 프로그램이다. 오히려 철없는 지도자를 중심으로 더 단결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김정일이 죽으면 북한에 소요가 일어나고 정권교체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오판이 었음이 이번에 드러났다. 북한은 눈 하나만 가진 기형의 나라다. 두 개의 눈을 가지고 보면 오판이 계속될 뿐이다.


<이철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