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다. 서늘한 공기가 어느덧 가을의 스산함을 느끼게 하고 가을 달빛이 휘황히 밝다. 달을 사랑한 이백의 얘기를 듣고 자라서인지 동양인이 바라보는 달빛은 맑고 깊은 시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비해 뭉크의 달빛 그림은 광기에 젖어 있다. 그의 초기 작품들은 흐느끼는 듯, 젖어 있는 듯 은은한 죽음과 불안의 그림자에 떠내려가는 듯, 어둡고 신비한 몽환의 세계로 사람을 끌어 들인다.
그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치유되었을 때 그린 그림들은 밝고 힘차지만 필치가 꺾여 있는 듯 산만하고 공허하여 예술적으로는 치료 받기 전의 그림이 출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뿌리 깊은 상실감으로 인해 저 영원까지 닿을 듯 마돈나와 하늘을 그리던 그가 정신적으로 더 건강한 사람이 되어 우울과 불안의 ‘사로잡힘’에서 해방되자 마치 그 존재의 근거를 잃은 듯 공허한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에 반해 반 고흐의 발작과 광기는 그의 영혼을 해방시켜 우주와 일체가 된 힘차고 역동적인 찬란한 예술로 승화된다. 그의 마지막 그림들엔 그가 없다. 보리밭과 하늘과 구름의 우주적 세계만이 출렁인다.
예술의 세계는 몽환과 병, 죽음과 환상을 허용하는 유일한 세계이다.
기억 속의 뿌리 깊은 마음의 병을 치유하고 새로 태어난다는 것은 신선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도 하지만 그만큼 힘겨운 일이다.
유난히 집착이 강한 강박적 우울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병적으로 아들에 집착하는 엄마도 있고 가족을 들볶으며 스스로 파괴되어 주변 사람들을 서서히 파괴시켜가는 이들도 있다. 집착하는 대상은 바뀌지만 고통과 상실의 기억인 마음의 뿌리를 바라볼 능력이 없다. 자신의 병든 성격을 안다 하더라도 대체할 대상이 없기에, 편집증의 대상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고 더욱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모르기에 공포를 수반한 분노에 시달린다.
강력한 집착은 창조적 방향으로 초월하면 세상에 도움이 되고, 부정적으로 작용하면 스스로와 타자들을 파괴한다.
일조량이 줄어들면 우울한 마음은 더욱 우울해진다.
가을, 독서의 계절이다. 책 속에는 이 모든 살아있음의 기괴한 열정을 해석해주고 동의해주고 이해시키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그리고 시와 음악이 있다. 단 하나의 버튼을 바꾸어 누르면 무궁무진하고 찬란한 예술과 광기의 세계가 삶의 활력을 더해준다.
존재의 꽃을 활짝 피운, 자유로운 삶의 장애가 되는 마음의 병을 진단하고 탐구하는 일은 흥미로운 일일 수 있다. 타자의 세계를 탐구하는 일은 또한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발상의 전환으로 세계의 사태에 ‘관심’을 갖는 일 … 무엇에든 초연하고 세심한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삶은 충만하고 무한한 활력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우리를 필요로 한다.
달빛 아래, 스스로 씌워온 가면을 벗어 던지고 상상과 초월의 세계로 조용히 자신을 허용할 때에, 밤의 긍휼함과 세계의 찬탄할 불가사의함이 구석구석 온 누리를 비추는 달빛의 우주적 아름다움으로 빛난다.
더욱 스산한 소식들이 들려올 가을과 겨울, 온전히 살아내기 위하여, 햇빛과 달빛, 마음의 빛이 더욱 소중하다.
박혜숙
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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