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9.11로 떠난 멋쟁이 고객들 회상하면 지금도 가슴저려”
“떠난 이들의 얼굴이 여전히 아른거려 가슴이 아프죠 ”
월드트레이드 센터가 훤히 보였던 리드스트릿(Reade St)에서 21년째 VIP 네일을 운영 중인 오혜숙(70)씨. 미국에 오자마자 네일업에 뛰어들어 내내 한 동네에서 매장을 운영, 단골도 많았다. 911테러 전만해도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서 일하는 멋쟁이들이 손님 중 30% 정도를 차지했다.
오씨는 “E트레인을 타고 매장근처인 종점에 도착하면 월드트레이드 센터로 통하는 지하보도로 몰려가던 출근길 젊은이들의 뒷모습이 그렇게 멋있을 수 없었다”며 “911테러가 E트레인을 가득 채우던 멋쟁이 인재들의 그 화사함까지 다 앗아가 버렸다”며 씁쓸해했다. 911 테러 한 달 후부터는 영업을 재개할 수 있었지만 테러 직후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했다.
인근 콘도에 거주하며 주중에는 일벌레, 주말에는 교외 집으로 향하던 젊은이들의 생명이 사라졌고 테러의 여파로 사람들이 콘도와 직장을 떠나면서 비즈니스도 예전만 못했다. 오씨는 “월드트레이드 센터 근처에 한인 델리만 20개가 넘었을 것”이라며 “이후로 하나둘씩 떠나 이제는 업소가 몇 개나 있는지도 잘 모를 정도”라고 말했다. 테러 한 달 전 대형 델리를 개점, 30명의 직원을 두고 야심차게 사업에 뛰어든 한 한인 델리 업주는 테러 이후 사업을 접으면서 극심한 우울증에 빠지기도 했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하듯 오씨의 사업도 변화를 겪었다. 매장은 건너편 건물로 이전했고 오씨도 은퇴했다. 사업은 둘째딸에게 물려줬지만 여전히 오씨는 매장에 나와 일손을 돕고 있다. 하지만 각종 부동산 개발 공사, 높아진 렌트 등으로 사람들이 떠났다. 오씨는 “오르는 가게와 주택 렌트를 감당하지 못해 차례로 이곳을 떴다”며 “10년 동안 렌트와 세금이 거의 3배로 무섭게 올랐다”고 말했다.
반면 저가 공략을 내세운 중국 업소들도 늘어 경쟁도 더욱 치열해졌다. 오씨는 “911테러 전에는 힘든 걸 몰랐는데 노력을 배로 들여도 열매가 절반밖에 안 될 정도로 사는 것이 빡빡해졌다”고 말했다. 반면 리뷰 사이트가 활성화되면서 온라인에 오른 호평으로 패션잡지에 실리기도 하는 등 조용히 불어오는 신기하지만 긍정적인 변화는 활력소가 되고 있다.
빠르게 바뀌는 세상살이가 정신없이 바빠도 그때를 회상하면 안타까운 얼굴들로 여전히 가슴이 저리다. 오씨는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 근무하면서 짬짬이 눈썹을 다듬으러 오던 30대 여자 손님은 아직도 눈에 아른거린다”며 “참 예쁘고 착했는데 911이후 안보이길래 궁금했는데 석달쯤 지났을까, 친구가 찾아와 앞으로도 꼭 기도하고 기억해달라며 사진을 맡겼다”며 가슴 아파했다.
긴 세월에 변하지 않은 것도 있어 위안이 된다. 가족 같은 단골들은 10년전이나 지금이나 오씨의 힘이자 보람이다. 오씨는 “근처 직장에서 근무하다 은퇴한 후에도 줄곧 찾아오는 손님 등 끈끈한 정이 있는 손님들이 있어 행운”이라며 “손님들과 건물주들이 한인의 기술과 신용을 인정해주는 이 곳에서 오래도록 이들과 함께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희은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