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제2차 세계대전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다가 우연히 일본군의 난징(남경) 학살사건에 관한 독일 기록영화 ‘Nanking’을 보게 되었다. 독일 감독 빌 구텐탁이 만든 것인데 당시의 사진과 신문보도, 그리고 살아있는 목격자들의 증언으로 꾸며진 기록영화다. DVD로도 나왔기 때문에 Netflix와 같은 대여업체에서도 빌려볼 수 있다. 독일인이 만든 독일영화라는 점에서 굉장히 차분하고 제3자의 입장에서 역사를 되돌아보는 시각을 지니고 있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놀란 것은 증언을 하고 있는 생존 일본군 노병들이 참회의 표정 없이 30만명이 희생된(중국통계) 난징학살 사건을 증언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때는 일본 군인들이 중국인을 그렇게 죽이는 수밖에 없었죠” 하는 식으로 담담하게 이야기 하고 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일부 일본군의 중국인 학살현장 사진들은 아이러니컬 하게도 당시 사진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던 일본인 무라세 모리야쓰가 찍은 것들이다. 산사람들을 파묻어 죽이고 일본도로 중국인의 목을 치는 등 잔인하기 이를 데 없다. 일본군이 사람을 몇 명을 죽였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인간을 곤충 다루듯 하는 그 당당한 자세에 분노를 느끼게 된다.
아이리스 장이라는 중국계 미국인 여성이 1997년에 ‘난징의 강간’이라는 논픽션을 출판하여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었다. 여기에 나오는 일본군의 만행 중에 일본인 장교 2명이 벌이는 ‘100명 목 베기’ 경쟁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당시 난징에 진군했던 일본군 무카이 도시아키 소위와 노다 쓰요시 소위가 일본도로 누가 먼저 100명의 중국인 목을 베느냐를 경쟁했다는 내용이다(이들은 종전 후 전범재판에서 총살 되었다). 그런데 이 일본장교의 이야기는 아이리스 장이 소문을 듣고 쓴 것이 아니라 1937년 11월30일자 ‘마이니치 신문’에 보도된 화제기사를 인용한 것이다.
이 책이 미국에서 출판되자 일본 우익단체들이 아이리스 장을 허위사실을 퍼트렸다하여 끊임없이 괴롭히기 시작했으며 그녀는 7년 동안 전화와 편지 등 갖은 협박에 시달리다 우울증에 걸려 2004년 권총자살 했다. 아이리스 장 훨씬 이전 일본 아사이 신문의 혼다 카치이치 기자가 1971년 일본과 국교가 없던 중공을 여행하면서 쓴 ‘중국여행’이라는 기행문에서도 일본군의 난징 대학살 사건과 100명 목 베기 경쟁 이야기가 묘사되어 있다. 혼다기자도 극우세력의 공갈협박에 집을 여러 차례 옮겼다고 한다.
독일을 여행하노라면 큰 도시마다 전쟁기념관이 있고 거기에는 나치독일의 만행을 그린 기록물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수상마다 취임하면 우선 나치의 만행부터 사과한다. 물론 교과서에 나치의 만행을 기록하고 있고 폴란드에 있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독일학생들을 견학 보내 자신의 조상들이 역사에서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가를 현장체험 시킨다.
일본은 정반대다. 도쿄 한가운데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는 도조 히데키를 비롯한 A급 전범 14명이 모셔져 호국의 영령 대열에 끼어 있는가 하면 입구에는 가미가제 자살 특공대원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일본은 반성할 줄 모른다. 부끄러워 할 줄 모른다. 오히려 전범을 우상화 하고 있다. 이 점이 독일과 다르다. 새로 등장한 노다 요시히코 일본수상이 난징 학살사건을 부인하고 있고 “전범은 일본 내에서 사면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전범은 없다”라고 말한 정치인이라는 사실은 반성할 줄 모르는 배후에 극우단체 뿐만 아니라 일본정부가 버티고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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