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어느날 루즈벨트 대통령이 갑자기 의회 지도자들을 밤에 백악관으로 불러들여 회의를 열었다. 그는 의회 간부들에게 “내일 새벽 5시30분에 다시 회의를 열겠습니다. 차를 보낼 테니 타고 오되 누구에게도 대통령과 만난다는 말을 하면 안 됩니다”라고 했다.
다음날 새벽 민주, 공화 양당 의회간부들이 안내되어 간 곳은 영빈관인 블레이어 하우스였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머리가 하얗고 약간 대머리인 학자 타입의 중년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는 물리학자 앨버트 아인슈타인 박사였다.
아인슈타인은 의회간부들에게 원자탄의 원리를 설명한 다음 이 폭탄을 먼저 갖는 측이 제2차 대전의 승자가 될 것이며 히틀러가 현재 제조를 서두르고 있다고 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의회 지도자들을 부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원자탄 제조에는 20억달러라는 엄청난 예산이 필요하오. 그런데 이 예산을 국민과 언론에 숨기고 집행해야 하는 것이 고민이오. 의회의 절대적인 비밀협조가 필요한데 무슨 방법이 없겠소? 이 걱정 때문에 나는 매일 잠을 못 이루고 있소”
회의장에 침묵이 흘렀다. 의원들에게도 설명하지 않고 20억 달러라는 거대한 예산을 집행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때 샘 레이번 하원의장이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대통령께서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내게 맡겨 주면 해결 하겠습니다”라고 자신 있게 발언했다.
다음날 레이번 하원의장은 의회에 출근하자마자 모든 분과 위원장들을 소집한 후 “긴급 예산편성에서 각 분과위원회는 1억달러씩 추가하되 어디에 쓰는가는 묻지를 마시오. 국가를 위한 것이오”라고 설명했다. 분과 위원장들은 샘 레이번 의장을 믿었기 때문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 않고 그의 지시를 따랐다. 미국의 원자탄은 이렇게 해서 만들어 졌으며 대통령과 의회가 극적인 협조로 이루어 낸 역사적인 작품이었다.
샘 레이번은 미의회의 전설적인 인물로 꼽힌다. 텍사스 민주당 출신으로 17년간 하원의장직을 지낸 최장수 국회의장으로 당시 대통령과 맞먹는 파워를 지닌 정치인이었다. 그는 국회의원의 자세에 관한 자신의 철학을 두 가지로 압축표현 했다. 첫째, 국가이익은 당의 이익보다 앞서며 둘째, 연방의원은 방해하는 사람이 아니라 건설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초선의원들에게 행한 충고 제1조는 “보이되 들리지 말라”였다. 말을 많이 하지 말고 남의 이야기를 경청하라는 뜻이다. 그후 “보이되 들리지 말라”는 미의회 신참의원들의 금언처럼 여겨져 왔다. 언제까지 입 다물고 지내란 말인가. 3년 동안 입 다물면 뭐가 보인다는 것이 샘 레이번의 이론이다.
최근 미국의 국가부채를 둘러싼 대란의 강경파 주인공들이 티파티의 공화당 신참의원 60여명이다. “보이되 들리지 말라”가 아닌 “들리되 보이지 말라” 현상이 미의회에서 일어나고 있다. 눈뜨고 못봐 줄 정도로 극한적이다. 하원의장도 이들 때문에 백악관과 아무런 합의를 이루어 내지 못한다. 티파티는 소수다. 그런데 소수가 다수를 이끌고 가는 기현상이 의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의회는 총체적인 정치부재며 나침반 잃은 배다. 미국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국민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대통령의 지도력만 문제 삼을 일이 아니다. 미의회에 샘 레이번과 같은 지도자 출현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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