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짐을 짊어지는 무게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그 한계선에 이르면 종이 한 장 얹어도 쓰러진다. 불경기가 오래 계속되다보니 버티기 한계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최근 코리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LA다운타운의 자바시장(의류제조 도매상)에서 한인상인들의 야반도주가 자주 일어나 물건을 납품한 상인들이 아우성이다. 오죽하면 야반도주 할까. 코리아타운에서 장사하는 영세상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나도 야반도주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며 야반도주를 동정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LA의 자바(Jobber)시장은 코리안들이 꽉 쥐고 있는 미국 최대 의류제조 시장으로 동대문 의류상가 비슷하다. 전에는 뉴욕이 패션과 의류제조의 중심지였으나 인건비가 비싸 지금은 LA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곳에 있는 한인업소와 공장은 약 1200개며 업종에 매달려 있는 코리안들을 모두 합치면 2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따라서 자바가 흔들리면 코리아타운의 경기가 휘청거린다. 자바에 불어 닥친 불경기의 찬바람은 근처에 있는 올림픽가 코리아타운에도 불어 닥쳐 요즘 코리아타운에도 밤새 문을 닫고 자취를 감춰버리는 야반도주 상인들이 생겨나고 있다.

미국이 아무리 불경기 늪에 빠져 있어도 자바시장과 코리아타운이 활기를 띠면 LA한인사회는 호경기를 누리기 마련이다. 좋은 예가 1980년대 초 미국에 불어 닥친 불경기로 레이거노믹스니 어쩌니 하면서 미국경제가 홍역을 앓고 있었을 때 자바시장과 코리아타운은 번창일로에 있어 불경기를 모르고 지냈었다. 원래 자바시장은 유대인 10여명이 운영하던 의류시장이었는데 남미에서 성공한 한국인들이 80년대에 LA의 자바시장으로 몰려들면서 그 규모가 커지기 시작했다. 자바시장에서 돈 번 코리안들은 그 돈을 어디에 투자 했을까. 부동산이다.

한인사회가 극심한 불경기에 허덕이고 있는 근본이유는 부동산이다. 한인들은 부동산에 이상할 정도로 관심이 많다. 돈만 좀 벌었다하면 부동산에 몽땅 투자한다. 때문에 부동산 불경기가 닥치면 타운에 돈이 돌지를 않아 경기가 엉망이 된다. 돈 있는 사람들이 돈을 풀지를 못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분산투자를 원칙으로 삼기 때문에 돈이 있어도 부동산에는 재산의 25퍼센트만 투자하는데 코리안들은 80퍼센트 이상을 부동산에 쏟아 넣기 때문에 부동산경기에 코리아타운이 울고 웃는 노예로 전락해 버렸다.

요즘엔 가게를 엄청나게 싸게 내놔도 팔리지가 않는다. 은행에서 융자를 얻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니 돈이 돌리가 없다. 가게는 팔리지 않고, 장사는 안되고, 종업원은 더 이상 줄일 수 없고, 렌트도 낼 수 없는 형편이니 문 닫고 야반도주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고통은 사람을 생각하게 만든다. 인간은 생각하는데서 지혜를 얻는다. 한인사회와 코리아타운이 이번 불경기에서 얻은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부동산 투자의 과욕’이다. 부동산 전력투구는 이민1세의 성공비결이기도 했지만 사업실패의 원인이기도 하다. 분산투자를 해야 하고 동업을 배워야 할 때라는 것을 지금의 불경기가 가르쳐 주고 있다.

이민1세의 무작정 경쟁 스타일에는 한계가 있다. 호경기에는 통하지만 불경기에는 그 과욕이 엄청난 후유증을 몰고 온다. 하루아침에 망하는 것이다. 이번 불경기가 지나면 코리아타운의 판도가 바뀔 것이다. 전에 돈 있다고 큰소리치던 사람들은 대부분 사라지고 젊고 이름 없는 유능한 2세들이 타운상권을 쥐는 세대교체 바람이 일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