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수다’라는 TV 프로그램을 보았다. 한국 최고의 가창력을 지녔다는 가수들의 재조명이 이 프로그램의 장점이다.
출연한 가수들이 마치 우리에든 사자들 같다. 그들에게 탈락이라는 불명예를 안기며 노래를 시킨다. 마치 전쟁에 나간 병사처럼 가수들은 혼신을 다해 열창한다. 그들의 긴장과 불안을 바라보며 즐기는 잔인하고 저급한 정신이 이 프로그램의 근저에 깔려 있다.
일생동안 노래라는 한 길을 걸어온 고수들은 마음껏 노래할 수 있는 무대를 필요로 하고 엄격하게 선정되었다는 급조된 청중 평가단에게 평가되고 등급이 매겨지는 상황에 처해진다.
청중 평가단은 노래를 즐기면 될 뿐 등급을 매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아니다. 7등을 한 가수들은 새로운 노래를 부르거나(김범수), 음악성이 출중하여 대중에 쉽게 어필할 수 없거나(BMK), 득음의 경지에 달해 여유와 편안함을 주는(김건모) 경우이다. 청중 평가단은 쉽고, 대중적이고, 격한 음악에 높은 점수를 주고, 일생 노래해도 개성이 각기 다른 가수가 들어간 미묘하고 예민한 음악성의 깊이는 감지하지 않는다. 여기에 예술성과 대중 사이의 영원한 갭이 있다.
한국 문화 전반에 흐르는 억압과 인간 경시의 풍조가 이 프로그램에서도 느껴진다. 출구가 없는 반 예술적인 상황에서 인기와 미디어에 상처 받으면서 또한 그를 필요로 하여 혼신을 다해 노래하는 가수들에게 숙연한 박수를 보낸다.
고수들이 서로 만나 한바탕 즐기는 진정한 유희, 자유와 환희가 넘치는 무대를 꿈꾸어 본다.
‘너를 위해’라는 노래로 선호도에서 1등을 한 임재범<사진>의 무대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마치 선풍이 크게 불어온 듯하다. 그의 눈빛은 맑고 강인하고, 삶의 고락에 지친 야수처럼, 거친 광야를 가로질러온 바람처럼 고요하고 의연하다.
그가 세상에 던져져, 그의 탁월함으로 인해 오히려 세상에서 버림받고, 다 비워버리고 견뎌낸 세월, 오랜 풍상에 더욱 깊고 명료해진 특유한 음색은 듣는 이의 가슴을 확 열어주고 심층의 전 존재를 깨운다.
그의 두 번째 노래는 남진의 ‘빈잔’이었다. 티베트 고승의 깊고 낮은 염불을 닮은, 바람소리, 쇳소리를 닮은 저음으로 그는 노래를 시작했다. 고대의 북과 현대의 일렉트로니카, 한 여성의 고음이 배경에 울려 퍼졌다.
격렬한 목소리로, 야수처럼 으르렁거리며, 그는 노래했다. 상식의 한계를 뛰어넘는 비명과 함성, 환희와 전율로 시간을 꿰뚫는 회오리바람처럼 무대 위에서 열광했고, 환영처럼 무대에서 사라졌다. 그가 병원으로 가야 했다는 후문을 들으며 그가 흘리는 눈물을 인터뷰 화면으로 보았다.
“라일락 꽃 향기 맡으며 / 잊을 수 없는 기억에 / 햇살 가득 눈부신 슬픔 안고 / 버스 창가에 기대 우네 //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떠가는 듯 그대 모습/ 어느 찬비 흩날린 가을 보며/ 아침 찬 바람에 지우지 / 이렇게도 아름다운 세상, 잊지 않으리 / 내가 사랑한 얘기, 저 별이 지는 가로수 하늘 밑/ 그 향기도 아는데 … 내가 사랑한 그대는 아나”
떠나온 지 몇10년이 지나 고국의 가로수 길을 걷던 청춘의 여름은 간 곳 없는데 저 심층의 기억으로부터 그의 노래는 숨 막히던 사랑의 기억을 솟구쳐 올린다.
박혜숙
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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