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전 때 미군병사들의 막사에 핀업 걸로 인기 있었던 여배우로 이벳 빅커스라는 2류급 스타가 있었다. 그녀는 섹시한 몸매로 1959년 9월 플레이보이지의 카버 걸에 선정되기도 했으며 ‘지옥으로 가는 지름길’‘여자거인의 공격’등 주로 공포영화에서 주연을 맡았었다.
이 빅커스(82세)가 지난주 베벌리힐스 근처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 되었는데 쇼킹한 것은 죽은 지 1년이 지나도록 아무도 몰랐다는 사실이다. 그녀의 시신은 너무 오래되어 거의 미라 상태였으며 우연히 들른 친구에 의해 발견 되었다. 자식들도 친척들도 그녀와 전화 한번 없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개인주의를 전통으로 삼는 미국문화의 비극이며 자식들과 함께 사는 것을 부담스럽게 여기는 현대노인의 취약점이다. 추석이 되면 부모를 찾아가는 귀향객으로 전국의 고속도로가 마비되는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미국에서는 이혼이 많은 탓인지 어머니날(5월)과 아버지날(6월)이 따로 있지만 한국에서는 어머니와 아버지날이 합쳐진 ‘어버이날’로 되어있다. 그런데 지난주 한국에서 치러지는 ‘어버이날’ 행사를 보니까 ‘어머니날’에 아버지가 얹혀있는 식이다. 말이 어버이날이지 아버지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처럼 어색해 보였다.
미국은 물론이지만 요즘은 한국에서도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자녀들이 드물다. 특히 시골을 떠난 젊은이들이 도시생활을 하기 때문에 명절에 고향에 내려가는 것이 유일한 부모와의 재상봉이다. 그것도 처음에는 자식들이 고향에 내려가 가족총회가 열리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자녀들의 고향방문이 줄어든다. 그리고는 마침내 “서울에 사는 자식들이 다 내려가 법석을 떠느니 부모님이 서울로 올라오면 형제들이 모이기도 쉽고 부모님도 편하지 않겠는가”라는 그럴듯한 진화론이 인정받아 부모가 자식들을 찾아오는 이른바 ‘와룡선생 상경기’가 펼쳐지게 마련이다.
최근 뉴욕타임스의 베스트셀러에까지 올라있는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도 바로 부모들의 상경기가 빚어내는 가슴 아픈 이야기다. 자식들이 부모생일에 고향에 내려가다 어느 날부터 부모가 서울로 올라와 자식을 만나는 것으로 패턴이 바뀐다. 처음에는 자식들이 서울역에 마중도 나가지만 나중에는 서로 미뤄 부모가 스스로 찾아오는 단계에 이른다.
그런데 어머니가 서울역 지하철에서 길을 잃었다. 한국풍습으로는 나이 먹은 부부가 손잡고 다니면 주책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노인부부는 항상 서로 몇 걸음 떨어져서 걷는다. 그러다보니 아버지는 지하철을 탔지만 어머니는 못타고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서울지리를 전혀 모르는데다 치매가 시작된 상태이었기 때문에(자녀들은 그것도 모르고 있었다) 어머니는 완전히 걸인신세가 되어 노숙자로 변해 버린다. 아들과 딸들은 가슴을 치고 후회하며 어머니를 찾지만 헛탕만 치고 1년 후에는 포기해 버린다. 어머니를 잃은 것이 아니라 어머니를 잊은 것을 알고는 자책감으로 세월을 보내게 된다. 소설 ‘엄마를 부탁해’는 현대사회에서 따로 떨어져 독립생활을 하는 부모와 자식 간에 어떤 형태로 관심을 가져야 되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이전에는 ‘가정의 달’하면 자녀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와 부부가 어떻게 지낼 것인가가 주제를 이루었지만 이제는 한 가지 더 늘어 노인이 된 부모와 어떻게 지낼 것인가가 새로운 숙제로 떠오르고 있다. 건강의학이 발달해 노인들이 장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식 키우는 것 못지않게 부모를 어떻게 모셔야 되는가가 ‘21세기 가정’의 연구과제다.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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