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택공항에선 재난을 피해 일본에서 자진귀국하는 미군 가족들이 낯선 USO(미군 위문협회) 관계자들의 환영을 받는다. 하와이 주지사는 호놀룰루 공항에 나가 기다리고 있다가 100만번째 도착하는 일본인 관광객의 목에 레이(환영 꽃목걸이)를 걸어주는 것이 연례행사이다. 누구나 살다보면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환영받는 때가 있다.
필자도 그런 환영을 여러번 받았다. 대학에 들어가자 학생회가 떡과 콜라로 신입생 환영회를 열어줬고, 입사 후엔 선배기자들이 신입사원 환영회를 열어 막무가내로 술을 먹였다. 교회에 처음 나가자 목사님이 새 신자 환영회를 베풀고 성경책을 선물로 줬다. 훈련소를 마치고 서울 헌병대에 배치된 첫날 ‘빳다’를 맞았다. ‘환영 빳다’라고 했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환영받을 일이 줄어들고 있다. 환영 받기는커녕 왕따 당하지 않으면 다행인 형편이다. 이제는 어떤 성격의 환영행사이든 십중팔구 베푸는 쪽에 끼게 되지만 환영회는 기실 베푸는 쪽도, 받는 쪽도 기분 좋고 흐뭇하다. 조직의 한 식구가 됐다는 동류의식이 피차간에 소통되기 때문이다. 바로 그것이 환영회의 취지일 터이다.
그런데. 지금 시애틀 한인사회에서는 그 환영회 때문에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신임 송영완 총영사를 위한 환영회 개최일정을 놓고 3개 지역 한인회장들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단순히 환영회 날짜에 대한 이견 같지만 속내를 보면 주도권 싸움이다. 까딱하면 예년의 광복절 기념식처럼 환영회도 두 지역에서 따로 열릴 공산이다.
타코마와 페더럴웨이의 한인회장들은 4월2일로 예정된 정례 단체장회의를 마친 뒤 같은 장소에서 환영회를 열어 별도 행사에 따른 경제적, 시간적 부담을 줄이자고 주장한다(이번 단체장 회의는 타코마 한인회가 주관한다). 시애틀한인회장은 같은 날 다른 장소에서 환영회를 주최하겠다고 발표했다가 비난이 일자 날짜를 오늘(26일)로 앞당겼다.
남쪽지역 두 한인회장은 나흘 전에 기자회견을 열고 시애틀한인회장을 공개 성토했다. 타코마 한인회장은 모든 단체장에게 환영회 일정(4월2일)을 이메일로 알렸지만 시애틀한인회장이 응답이 없다가 느닷없이 같은 날 환영회를 주최하겠다고 통보했다며 “제발 한인사회 행사에서 돌출적인 행동을 자제하고 협조해달라”고 촉구했다. 시애틀한인회장은 그 이메일을 보지 못했다고 밝히고 이날 기자회견엔 LA 출장을 이유로 참석하지 않았다.
이번 해프닝은 시애틀지역 한인사회 단체들에게(다른 지역도 비숫하지만) 비쳐지는 총영사의 위상을 뚜렷하게 투영한다. 한인사회에서 총영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비정상적으로 크지만 이를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개선하려는 사람이 없다. 한인사회의 크고 작은 단체들이 벌이는 잡다한 행사의 성패기준이 총영사의 참석여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하룡 전 총영사도 고별 기자회견에서 헤진 구두밑창을 보여주며 “발이 닳도록 뛰었다”고 자랑했다. 그의 전임 총영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거의 매일 단체회의나 회식에 모셔졌다. 총영사가 술자리에서 나오기를 밤늦게까지 차안에서 기다리기 일쑤여서 피로가 누적돼 건강과 가정생활에 지장이 많다며 결국 사표를 낸 대리운전 기사역할의 직원도 있었다.
시애틀총영사는 워싱턴주를 비롯한 서북미 5개주를 대상으로 한국정부를 대표하는 외교관이다. 영사업무와 동포보호 임무도 중요하지만 통상증진과 문화교류 지원 등 실용외교가 더 강조되는 시대이다. 총영사가 발이 닳도록 뛸 곳은 한인단체들이 아니라 미국 전 국토의 1/4을 차지하는 서북미 5개주의 의회와 각급 정부기관과 경제단체들이다.
총영사가 한인사회의 가부장적 역할에서 풀려나 본연의 외교업무에 전념하도록 한인단체들이 도와줘야 한다. 단체행사에 총영사의 발을 시시콜콜 묶어두는 것은 국가적 낭비라고 할 수 있다. 총영사와 눈도장 찍는 성격의 환영회부터 생략하는 게 좋겠다. 필자가 군대에서 얻어맞은 환영 빳다처럼 ‘없느니만 못한 환영회’가 될까봐 걱정이 돼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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