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령층 다중 만성질환 조율된 진료 시스템 시급
처방약끼리 심한 부작용 유발
동일한 검사 중복 병세 악화도
환자정보 전자기록부 필수적
삶이 전개되는 ‘그라운드’는 거칠다. 맞서 싸우는 상대팀이 ‘질환’일 때는 특히 그렇다. 이중 태클, 삼중 태클, 심지어는 오중 태클까지 나온다. 지난 12월에 나온 미국 보건후생부의 전략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인의 25%가 두 가지 이상의 만성질환을 갖고 있다. 나이가 듦에 따라 이 비율도 올라가 65세 이상의 연령대에 속한 인구의 3분의2가, 80세 이상의 고령층의 경우에는 4분의3이 두 가지 이상의 질환과 싸우고 있다.
현재 연방정부의 의료보험 프로그램인 메디케어의 전체 지출 가운데 69%가 다섯 가지 이상의 만성질환을 앓는 환자들에게 사용된다. ‘베이비붐’ 세대가 60대 말, 70대 초로 접어드는 2020년에는 다중 만성질환의 태클에 걸린 환자들의 수가 지난 2000년의 5,700만명에서 8,100만명으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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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후생부의 전략보고서 작성을 담당한 아난드 K. 파레크 박사는 이처럼 ‘다중 질환’ 환자들이 빠르게 늘어나는 이유로 고령인구 증가와 좀처럼 수그러들 줄 모르는 건강 위험요소들, 그리고 눈부시게 발달한 현대의학을 꼽았다. 한 마디로 각종 질환에 사로잡힌 채 ‘약발’에 의해 연명하는 고령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는 얘기다. 보건후생부 차관보이기도 한 파레크 박사는 “이로 인해 의료비가 천정부지로 치솟을 수밖에 없다”며 “이제는 새로운 건강관리 모델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중 만성질환자’들을 효과적으로 치료하기 위해 제대로 조율된 의료관리 체계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
현재의 의료 시스템 하에서는 두 가지 이상의 질환에 걸린 환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일관성이 없거나 서로 정면으로 충돌하는 상충적 치료를 받기 십상이다. 예를 들어 A라는 의사가 처방한 심장병 치료제는 이 환자의 천식을 다스리기 위한 B라는 의사의 처방약이나 골다공증, 혹은 관절염 증상을 완화하기 위한 C라는 의사의 처방약에 심한 반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일선 의료인들에 전달되는 표준 임상진료지침(clinical practice guildelines)은 개별적인 만성질환 치료를 돕기 위해 개발된 것이라 복합적인 질환을 다루는 데에는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이 때문에 한 가지 질환을 위해 추천한 처방이 환자가 앓고 있는 또 다른 병에 악영향을 끼치는 사례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환자에 대한 전인치료(total care)를 조율할 담당의가 없거나 환자 본인이 자신이 복용한 처방약과 비처방약을 의사들에게 제대로 보고하지 않을 경우 이런 저런 약품들이 한데 뒤섞인 ‘의약 칵테일’(medical cocktail)은 위험하기 그지없는 ‘몰로토프 칵테일’(molotov cocktails: 화염병)로 변하고 만다.
많은 환자들은 갑자기 생겨난 새로운 증상이 그들이 앓고 있는 여러 질환 가운데 하나를 치료하기 위한 처방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응급실로 실려가거나 입원을 하고, 호되게 비싼 온갖 검사를 받기도 한다. 설사 이런 비상사태를 겪지 않더라도 다중질환 환자들은 여러 명의 다른 의사들로부터 동일한 검사를 중복해서 받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불필요한 의료비 부담만 늘어나게 된다.
예일대학교 의학대학원의 매리 E. 티네티 노인병 전문의는 “의사는 복수의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물어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즉, 원하는 바가 가능하면 오래 살고 싶은 것인지, 신체의 기능을 최대한 유지하는 것인지, 아니면 고통스런 증상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인지를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모두를 한꺼번에 이룰 수만 있다면야 더할 나위 없겠지만 “모든 것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늘 선택을 해야만 한다.” 그녀는 이어 “다중질병 환자의 경우 한 가지 병을 다스리기 위한 치료가 다른 질병을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의사에게 ‘이 치료가 다른 병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꼭 물어보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뉴욕타임스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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