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여왕의 할아버지인 조지5세는 죽기 전 캔터베리 대주교에게 맏아들에 대한 자신의 고민을 이렇게 털어 놓았다고 한다. “데이빗이 나의 뒤를 이어 왕이 되면 1년도 안되어 무슨 일을 저지를 것이오. 나는 그것이 너무나 걱정이 되오”.

조지5세의 맏아들 데이빗은 왕에 오르자마자 정말 일을 크게 저질렀다. 남편이 있는 미국여성 윌리 심슨과 결혼하겠다고 고집을 부린 것이다. 심슨은 보통여자가 아니었다. 당시 런던 사교계의 바람둥이로 널리 알려진데다 한번 이혼경력도 있는 여자였다. 더구나 주영 독일대사 리벤트롭과 연인 사이라 간첩혐의까지 받고 있었으며 미국대사인 조셉 케네디(케네디 대통령의 아버지)와도 염문을 뿌려 부인인 로즈 케네디는 심슨이 참석하는 디너파티를 모두 거절했다고 한다.

윌리 심슨이 얼마나 매력적인 여성이었길래 에드워드8세가 왕위까지 버렸을까. 심슨과의 결혼을 결사반대한 그의 어머니 퀸 매리(롱비치에 있는 퀸 매리 호는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것이다)가 가족들에게 밝힌 기록에 의하면 에드워드8세는 성적 결함이 있었으며 심슨에 의해서만 치유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섹스노예가 되었다고 한다. 이는 당시에는 차마 보도될 수 없었으나 최근 필립 지글러 등 영국왕실 전문 작가들에 의해 밝혀지고 있다.

영국 국왕은 단순한 왕이 아니다. 왕인 동시에 영국국교의 수장이다. 따라서 이혼녀와는 도의적으로 결혼할 수가 없는 처지다. 결국 에드워드8세는 왕위를 포기하고 심슨부인과 결혼했다. 이에 따라 딸만 2명을 둔 그의 동생 알버트가 왕위에 올라 조지6세가 되었으며 맏딸 엘리자베스가 왕위를 계승하는 역사적인 일이 일어나게 된다. 심슨부인 때문에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사람 팔자 알 수 없다”는 말은 바로 엘리자베스여왕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엘리자베스의 아버지인 조지6세는 말더듬이였기 때문에 국민들 앞에서 연설하는 것이 괴로움 중의 괴로움이었다. 더구나 2차 대전 과정에서 독일의 공습까지 받았던 터라 국왕의 한마디 한마디가 영국국민 사기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같은 분위기 속에서 조지6세가 말더듬이 교정 전문교사로부터 연설을 배우는 것을 그린 영화가 바로 지금 시중에서 상영되고 있는 화제의 영화 ‘King’s Speech’다. 이 영화는 에드워드8세와 심슨부인과의 관계를 간단히 그리고 있어 윈저가의 비극을 엿볼 수 있다.

영국왕은 성으로 부르지 않고 이름으로만 불리운다. ‘엘리자베스’는 성이 아니라 이름이다. 원래 엘리자베스여왕은 빅토리아여왕(덴마크 왕 앨버트와의 연애로 유명)의 후손이다. 따라서 오리지널 라스트네임은 앨버트왕의 성인 ‘색스 코부르그 고다’이다. 그러나 독일과 1차대전을 치르면서 독일 발음의 이 성이 국민의 귀에 거슬린다하여 엘리자베스의 할아버지인 조지5세가 라스트네임을 ‘윈저’로 바꾸어 버렸다.

보통 돈 있고 명예 있으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통한다. 영국왕은 돈 있고 명예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행복하지가 않다. 에드워드8세가 그랬고 엘리자베스여왕도 자신의 결혼은 성공했지만 자식들은 찰스를 비롯해 앤드류왕자, 앤공주 등 3명이 모두 파경을 맞아 자식농사가 엉망이다. 더구나 다이애나비의 비극으로 왕실의 이미지가 손상 되었으며 최근에는 찰스왕자가 알츠하이머 증상을 보인다하여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말이 많다. 아들에게 물려주지 못하고 손자에게 왕위를 물려준다면 이것 또한 큰 문제다. 윈저가의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