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정신세계를 추구할 수 있는 절대 고독과 오랜 모색의 ‘시간’이다. 이민자들은 먼 곳으로부터 떠나와 살고 있는 곳에 정착해서도 늘 고국을 향한 그리움을 지니고 있기에 바람과도 같은 자유로운 내적 공간을 지닌다.
경제적 여건으로 인해 창조에 전념할 수 없는 대부분의 이민 예술가들에 있어서 자유로운 ‘시간’은 염원과도 같은 그 무엇이다. 경제 행위란 효율성을 추구하지만 예술 창조는 효율성을 넘어 일상생활의 구조를 벗어난 본질적 정신의 자유를 추구한다.
생업에 종사하면서도 예술 창조를 계속해나가고, 예술을 그만 두었다가도 끝내 다시 시작하는 것은 순수를 추구하는 예술 창조가 지닌 마력적인 힘 때문인데, 인간으로 태어나 최고 최선을 살고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이 그 근원이다.
이민자들의 예술은 통상적 구조를 벗어난 삶을 살아가는 의식 상태의 반영이기에 그 특이성으로 인해 무언가 다른 신선함을 그가 속한 문화권에 더 할 수 있다. 특히 한국 내의 작가들에게 해외 작가들의 작품이 그 특이하고 열린 공간의식을 더 할 수 있다.
캘리포니아의 지형과 기후는 시카고, 뉴욕의 예술과는 다른 특성을 지닌 예술을 창조한다. 자연과 더 가까워 관념적인 동부의 예술에 비해 생생한 활력이 있다. 지진을 피해 단층으로 펼쳐진 도시 풍경은 대기와 더욱 가까이 느낄 수 있는 지형을 전개해 캘리포니아 예술의 가장 중요한 특성인 열린 공간성과 밝은 햇살로 인한 가볍고도 밝은 색조를 보여준다. 빛 밝은 햇살의 이면에 가장 밝은 빛에 대면한 어둠의 문화 또한 캘리포니아 예술의 특별한 요소이기도 하다.
한국 문화원에서 남가주 미술가협회전이 열리고 있다. 이 모임은 42년의 역사를 지녔고 해마다 협회전을 개최하는 데 자격이 되는 누구나 출품할 수 있기에 친목단체전이라 할 수 있다. 예술성의 수준이 높은 전시회라기보다는 오랜 시간을 함께 해온 다정한 사람들의 따뜻한 전시회이다.
한인 커뮤니티에는 가톨릭 미술가전, 기독교 미술가전, 홍대 미전, 서울 미대전 등 다양한 단체의 미술전이 개최되는 데 예술의 본질상 이런 미술전이 과연 필요한 것인가를 의문할 수 있지만 자주 만나야 생존해 나갈 수 있는 이민사회의 특이한 경우라 볼 수 있다.
이번 문화원 전시는 작가들의 초기 작품과 함께 현재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회인데 예전에 보고 늘 마음에 기억하던 좋은 그림을 다시 볼 수 있어서 기뻤다. 김성일의 ‘군인(soldier, 사진)’은 언제 보아도 유쾌한 재미있는 조각이다. 몇 년 전 이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도 큰 기쁨을 느꼈는데 다시 보아도 여전히 중요한 작품으로 느껴진다. 작가의 자화상 같기도 하고 이민자의 초상 같기도 하다.
김윤진의 초기 작품인 ‘섬’은 아름답고 깊은 그림이다. 섬처럼 떨어져 사는 LA 지형 속 이민자의 고적한 마음을 무척 아름다운 색조의 깊이로 추구했다.
김순련의 복숭아 그림 앞에 한참 서 있었다. 단아하고 간결한 조형성이 뛰어나고 작가의 깊은 심성이 전해진다. 손영숙의 초기 작품의 자유로운 창조적인 열정을 다시 볼 수 있어서 기뻤고, 끝없이 한 길을 모색해온 김소문의 힘찬 빛 밝음이 좋았다. 전체적으로는 학예회 수준의 전시이지만 오랜 시간 함께 해온 다정한 캘리포니아 작가들에 대한 애정을 느낀다.
한국이 세계 경제 15위에 든다지만 문화수준이 그만큼 높다고 볼 수는 없다. 한국 문화원의 전시 공간 또한 결코 좋은 전시공간이라고 볼 수 없다. 천장이 낮고 구조 자체가 어떤 작업을 갖다 놓아도 작품이 사는 공간이 아니다.
이민사회의 미래를 위해서 현대 미술을 제대로 보일 수 있는 현대 미술관의 건립이 필요하다. 이민문화가 꽃 피우려면 예술을 가까이 하고 예술가를 아끼는 이민자들의 관심이 중요하다. 커다란 가구로 가득찬 집 보다는 간결한 가구로 비워진 공간에 좋은 작업이 걸린 집이 아름답다.
박혜숙 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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