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다 겪은 어처구니없는 망신 케이스-프랑크푸르트에서 LA로 오는 루프트한자를 탔을 때의 일이다. 화장실에 들어가 칫솔질을 하고 있는데 밖에서 어떤 남자가 다급한 목소리로 “Help me! Help me!”를 외치면서 문을 두드려 댔다. 배탈이 났거나 멀미를 하는 승객인가 싶어 얼른 화장실 문을 열어주면서 “어디가 아프냐”고 물었더니 이 젊은 친구 왈 “제발 내 돈 돌려줘요. 그 돈 없으면 나는 미국여행 못해요. 제발, 제발요!”라며 ‘Please’를 연거푸 되풀이 하는 것이 아닌가.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었다.
“돈을 돌려 달라고? 아니, 무슨 돈? 난 모르는 일이요”
“미스터, 그 돈은 내가 방학 때 뼈 빠지게 노동 쳐서 모아놓은 것입니다. 그러지 말고 제발 돌려 주세요”
“어허, 이거 정말 야단이로군. 도대체 무슨 일이요?” 하고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더니 자신을 독일 대학생이라고 소개하며 털어놓은 젊은이의 이야기는 이렇다.
화장실을 다녀왔더니 바지 왼쪽 주머니에 고무 밴드로 묶어 가지고 다니던 3,000달러가 없더라는 것이다. 승객 좌석을 온통 뒤졌으나 찾지 못해 화장실에서 떨어트린 것을 알고는 지금 문을 두드리는 것이라고 했다. 자기가 화장실에서 나온 후 들어간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했다. 눈으로 확인했다는 것이다.
“이봐요, 젊은이. 난 그런 돈 보지도 못했고 줍지도 않았어. 당신을 도와줄 수가 없어 안됐네. 화장실에서 떨어트린 것 확실해요? 잘 생각해보라구”했더니 화장실 가기 전까지 자신이 호주머니에서 돈을 만진 기억이 나기 때문에 거기서 잃어버린 것이 틀림없다고 했다. 결국 나는 파렴치범 누명(?)을 뒤집어쓴 채 내 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한 30분 지났을까. 스튜어디스가 “누가 화장실에서 돈 주운 사람 없습니까?”라는 질문을 계속하며 뒷줄에서부터 올라오고 있었다. 내가 앉은 좌석에 이르러서는 나의 얼굴을 쳐다보며 그 질문을 되풀이 했다. 이거 정말 루프트한자 잘못 탔군. 어쩐지 티켓이 싸더라니! 인상 깊었던 독일여행 이미지가 엉망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스튜어디스가 얼마만큼 앞으로 걸어갔을 때 동남아인 인상을 지닌 어떤 중년 남자가 자신이 화장실에서 주웠다며 3,000달러를 내놓았다. 그는 화장실에서 돈을 발견하자마자 호주머니에 집어 넣은 다음 재빨리 자리로 돌아간 모양이다. 독일학생이 그 남자가 화장실 들어가는 것을 못 본 것이다. 이 중년 남자, 정말 엉큼하기 짝이 없었다. 돈 임자가 나타나면 돌려줄 것이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 갖고 있다가 스튜어디스 물음에 찔끔해 자수(?)한 것 같았다.
사람은 자신이 본 것을 곧 진실이라고 믿는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을 너무 믿다보면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라는 함정에 빠진다. 인간의 시각에는 능력의 한계가 있다. 번쩍거리는 것이 모두 금이 아니다. 겉으로는 번쩍거리고 살아도 정신적으로는 초라하게 사는 사람들을 행복한 사람들 인 것처럼 부러워하는 것도 그런 종류의 오류다.
유리컵이 위에서 보면 원이고 앞에서 보면 사각형인 것처럼 모든 사물은 양면을 갖고 있다. 이 양면을 다 볼 줄 아는 시각을 지녀야 현명한 사람이다. 독일학생은 자신이 본 것을 너무 진실로 생각한 나머지 엉뚱한 사람을 파렴치범으로 몰아넣은 실수를 한 것이다. 보이는 것 모두가 진실은 아니다. 보이는 것만 믿는다면 종교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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