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7일로 정전협정 57주년을 맞는다. 기자시절 판문점을 취재하면서 항상 궁금한 것이 있었다. 인민군들이 망원경으로 남쪽을 살피는 판문각 뒤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을까. 몇 년전 미주한인 여행사에서 북한 관광단을 모집 했는데 스케줄 속에 판문점관광이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북쪽에서 본 판문점을 구경하고 싶어 기를 쓰고 관광단에 끼어들었다.
판문각 뒤에는 정말 뭐가 있었다. ‘김일성’이라고 쓰여 진 커다란 돌로 된 기념비(가로 10미터정도)가 바로 그것이다. ‘김일성’이라는 세 글자는 김일성 자신이 숨을 거두기 전 공문서 맨 마지막에 남긴 그의 친필사인이라고 한다. 서명 날짜는 그가 사망한 날 밤인 ‘1994년 7월7일’로 되어 있었다. 이 기념비에는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었다.
“조국통일 위업을 이루기 위한 력사적 문건에 생애의 마지막 친필존함을 남기신 경애하는 김일성주석의 애국애족의 숭고한 뜻 후손만대에 길이 전해가리”
통일에 관계된 문서에 사인을 한 후 심장마비를 일으켜 책상위에 머리를 떨군 채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 인민군 안내장교의 설명이었다. 마지막에 서명한 문서가 통일문서였다는 사실은 ‘위대한 수령님’이 얼마나 통일에 관심을 기울였는지를 잘 말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김일성의 최후를 ‘통일’과 연관시켜 드라마틱하게 설명하는 이유는 김일성의 살아생전 꿈이 ‘통일’이었기 때문이다. 북한을 여행하면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등장하는 인사가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야죠” “통일의 그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등으로 마무리되기 마련이다. 인사조차 이념적이다.
처음엔 그것을 잘 느끼지 못했는데 대화 끝 마지막에 으레 ‘통일’이라는 단어가 올려지는 것을 보고 “그럼 어떻게 통일 된다는 이야기인가” 생각을 하게 된다. 남한이 북한을 흡수하는 건가, 북한이 남한을 흡수한다는 건가.
북한에서 말하는 통일은 100퍼센트 북한주도로 남한을 통일 시킨다는 뜻이다. 매머드 퍼레이드에서도 ‘통일’이라는 글자가 수놓아지고 어린이 대궁전 공연에서도 여러번 ‘통일’이 등장하며 심지어 교회(관영)예배의 기도내용도 ‘통일’ 일색으로 꾸며져 있었다.
김정일의 과업은 부친인 김일성의 꿈을 이루는 것이라는 것을 한국이 명심해야 한다. 이는 국방위 부위원장인 오극렬이 최근 천안함 사건을 둘러싼 긴장 분위기에 대해 “공화국은 전쟁을 바라지 않지만 만약 미국과 일본을 등에 업고 남조선이 공격해오면 이번 기회에 조국해방전쟁 때(6.25를 의미) 다하지 못한 조국통일 위업을 반드시 성취하라는 것이 김정일 위원장의 명령”이라고 언급한 것만 보아도 짐작할 수 있다.
북한은 지금 6.25남침 때와는 전혀 다른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그것은 세계 최강으로 알려져 있는 북한 특수전부대가 지하터널을 통해 남한후방을 교란하는 사이 전격적으로 기갑사단이 휴전선을 넘는다는 게릴라전과 정규전의 혼합인 ‘배합작전’이다. 이는 월남전에서 베트콩이 지하터널을 통해 어떻게 미군을 무력화 시켰는가를 응용한 전술체제며 김일성이 이 터널작전의 근본체제를 설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트로이 전쟁이나 비슷한 개념이다.
다음 주부터 동해에서 한미 대규모 기동훈련이 펼쳐지는데 그것은 정규전에 대비한 훈련이다. 북한이 기획하고 있는 것은 정규전이 아니다. 월남전식 게릴라전 배합작전이다. 한미기동훈련은 신발신고 가려운 발을 긁는 것 같이 어딘가 답답해 보이는 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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