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나무에는 꽃 하나에 반드시 열매 하나가 열린다고 한다. 허투루 피는 꽃이 하나도 없다는 말이다. 책임감이 강하고 정확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한 번 매달린 대추 열매는 모두 무병하게 잘 자란다고 한다.

태풍이 불고 바람이 불면 다른 과일들은 다 떨어지는데 대추는 더 실하게 많이 열린다는 것이다. 제사상에 대추를 맨 먼저 올리는 것도 자손을 많이 낳아 모두 튼튼하게 길러내 대추나무처럼 단단하게,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극복하며 대대로 가계를 이어가라는 선조들의 뜻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추나무를 꼭 닮은 지인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얼마 전에 한 선배 댁에서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헤어지면서 다음에 만날 때는 세 남자(남편들)가 요리를 하자고 제안했던 분이다. 집주인의 정성으로 피워낸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한 뒤뜰 정원의 포도나무 넝쿨아래 마련된 식탁에서 맛난 식사를 하면서 이야기꽃을 피우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었다. 그리고 며칠 후에 이메일이 온 것이다. 메뉴를 해물 빠에야로 하자고 했다. 몇년째 요리책과 인터넷으로 요리를 배워온 베테런인 대추나무 지인만이 제안할 수 있는 메뉴이다.

대추나무 지인은 지금 몇달째 암과 투병 중이다. 수술 후 정기적으로 키모치료를 받고 있어 그 후유증으로 쉽게 피로하고, 금속이 닿으면 손끝이 저려 나무수저를 사용하고, 컴퓨터 자판도 두드리기가 힘들고, 오랫동안 즐겨 해오던 운동도 못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들에게 사랑의 전도사로 기쁘고 행복하게 사는 법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좋은 노래를 모아 CD를 만들어 라벨에 시를 적어서 주고, 광적인 독서로 우리의 안목을 넓혀주고, 우리에게 필요한 걸 꼭 집어서 기도해 주고, 멋진 연주회 DVD를 준비해 초대한다. 수 십년째 새벽에 일어나 일기를 쓰며 하루를 시작하는 그가 말했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얼마나 감사하고 하루가 기대되는지 몰라요. 참 행복해요!”

벼락 맞은 대추나무로 만든 도장은 가격이 아주 비싸다고 한다. 악귀를 물리치는 힘이 있을 뿐 아니라, 행운을 가져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단단하기도 돌보다 더해서 도끼나 톱으로도 쪼개거나 자를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한 번 파놓은 글자가 마모되지 않아 오랫동안 변함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보다 건강하게, 60이 넘은 나이에도 마라톤을 하며 아직 인생의 봄을 살고 있던 대추나무 지인에게 어느 날 슬그머니 찾아들어온 암은 분명 벼락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그 벼락으로 인해 대추나무 지인은 더 단단해지고, 더 많은 대추를 열게 할 것이라고.

중국에서는 신선이 준 과일이라고 전해지는 대추. 풍요의 상징인 대추. 머지않아 그의 대추나무에는 사랑 순도 100%의 유기농 대추알이 흐드러지게 매달릴 것이다. 이정록 시인이 예찬한 ‘대추나무’처럼, 그렇게 흐드러지게.

“땅바닥으로 머리를 디미는 시래기의 무게와
옆구리 찢어지지 않으려는 어린
대추나무의 버팅김이
떨며 떨리며, 겨우 수평의 가지를 만든다
봄이 되면 한없이 가벼워진 시래기가
스런스런 그네를 타고, 그해 가을
버팀목도 없이 대추나무는
닷 말 석 되의 대추알을 흐드러지게 매다는 것이다"


이영옥 / 수필가·교육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