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한국팀이 16강에 진출했다. 5분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 한국-나이지리아 경기의 마지막 순간을 관전한 코리언들은 실감했을 것이다. 더구나 나이지리아가 막판에 결정적인 슛을 두 번이나 시도했을 때는 심장이 멎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16등 안에 들면서 환호하는 스포츠 경기는 축구밖에 없다. 8강에 들면 대단한 영광이고 4강에 들면 국민들이 거리에 뛰쳐나오는 광풍을 일으킨다. 실제 네덜란드가 1988년 유럽선수권 대회에서 독일을 2대1로 꺾고 4강에 진출 했을 때 700만 명의 네덜란드 국민들이 전국에서 거리로 쏟아져 나와 환호한 적이 있다. 네덜란드는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에 점령당해 핍박 받았기 때문에 축구경기에서 독일을 꺾으면 국가적인 경사로 여겨 모든 국민이 밤새도록 맥주파티를 벌인다고 한다.
축구열기는 살인과 자살소동을 빚기도 한다. 만약 한국과 나이지리아의 2대2 동점경기에서 막판에 한국선수가 자살골을 초래해 패했다면 어떻게 될까. 그 선수에게 원망과 증오가 집중될 것이다. 축구열기에는 환호뿐만이 아니라 이같은 잔인한 늪도 도사리고 있다.
1994년 월드컵 대회 때 콜롬비아가 미국과 1대1로 가다가 경기 종료 몇분을 앞두고 콜롬비아의 수비 에스코바 선수가 자살골을 넣어 2대1로 지자 고향에 돌아온 에스코바를 카스트로라는 동네 깡패가 사살한 적이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총알이 12발이나 발사 되었는데 그때마다 옆에 있던 동네 주민들이 “고-올(goal)”을 외쳐 세계를 놀라게 했다는 점이다.
여성 팬이 자살한 적도 있다. 1969년 월드컵 선발 예선전에서 엘살바도르가 온두라스에게 패하자 엘살바도르의 볼라노스라는 18세의 소녀가 “나는 더 이상 살 의미를 잃었다”며 TV 앞에서 권총 자살했다. 장례식에는 그녀를 애도해 엘살바도르 대통령과 장관들도 참석했으며 마침내 온두라스 내 엘살바도르 이민 탄압을 핑계로 엘살바도르가 온두라스를 쳐들어 간 것이 그 유명한 ‘축구전쟁’이며 양쪽 합해 3,000명의 사망자를 냈다.
여기에 비하면 한국의 ‘붉은 악마’ 응원은 수준급이다. 월드컵에서 부수적인 행사로 월드컵 응원상을 마련한다면 틀림없이 한국이 차지하리라고 믿는다. LA에서는 수만명이 경기가 중계되는 새벽 4시30분에 스테이플센터와 거리로 쏟아져 나왔는데 무엇보다 질서정연한 것에 미국 매스컴들이 놀라고 있다. 왜 사람들은 축구경기에 열광할까.
인간은 남보다 우월해지고 싶은 잠재의식을 갖고 있다. 또한 인간은 휴식도 필요로 하지만 자극도 필요로 한다. 이같은 문제를 일시에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이 축구경기다. 깃발은 여러 사람을 하나로 묶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자기나라 팀이 승리하면 마치 자신이 승리하는 것 같은 집단 나르시시즘의 흥분에 빠져 정치와 사회문제를 잊게 된다.
그래서 독재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가 바로 축구경기다. 국민을 흥분 시키고 하나로 묶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군정이 연장될 수 있었던 이면에는 월드컵 우승의 영향이 컸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이지리아의 16강 탈락은 심각하다. 왜냐하면 아프리카 국가 대부분이 그러하듯 나이지리아도 대표팀 운영을 국가가 맡고 있기 때문이다. 올림픽에서 금메달까지 받은 적이 있는 나이지리아 팀은 이번에 4강 진출을 기대했으나 오히려 한번도 이기지 못해 16강 탈락이 정치문제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다. 열기가 지나치면 예기치 못한 불행한 일들을 자아내는 속성을 지닌 것이 또한 축구라는 이름의 스포츠다.
이철 /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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