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60주년 특집
“전쟁? 말도 꺼내지마.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지금껏 내가 살아있는 것만 해도 하늘이 도운거야.”
버지니아에 사는 이경주 씨(82.에버그린 아파트.사진)에 6.25 동란은 ‘언어도단(言語道斷)’ 역사다. 벗들과 함께 톨스토이와 괴테의 문학을 논하던 섬세한 정신은 어느 날 포화 가득한 조국의 전장으로 이끌려 들어갔다. 학도병으로 참전한 그는 소대장이 됐고 부상으로 전선을 떠났다. 그리고 60년. 매년 6월이면 그는 ‘동란’에 대한 시를 쓴다. 상상력이 아니라 눈물과 가슴으로 적어 내려가는 노병(老兵)의 시다.
그는 학도병이었다. 군번도 이름표도 없이 총을 든 학생이었다. 1950년. 그 시대를 청년으로 살았던 젊음에는 어쩔 수 없는 숙명 같은 것이었다.
1946년 고향인 함흥에서 단신 월남한 그는 고려대에서 공부하던 중 전쟁을 만났다.
“동두천 7사단 작전참모로 있던 선배한테 놀러간 날 하필 사변이 터졌어요. 자고 일어나 졸지에 사단과 함께 후퇴를 시작했지요.”
7사단 그의 부대에는 40-50명의 학도병들이 배속됐다. 학도병들이 하는 일이라곤 서류소각과 짐 운반, 불침번 서는 게 전부였다. 군인들도 마찬가지였다. “학생들이나 군인이나 처음엔 후퇴하는 일이 주 일과였어.”
부대는 낙동강까지 물러났다. 영천 지역에서 숨을 가다듬고 최후의 방어선을 구축했다. 그러다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는 일거에 뒤집어졌다. 10월1일, 38선을 돌파했고 그는 평북 희천까지 북진하는 대열에 있었다.
“이왕 젊은 나이에 군에 있는 건데 장교를 해보자는 마음이 들었어요. 친구들과 부산의 육군종합학교에 지원했지요.”
그는 50년 10월12일 전시 중에 장교 배출을 위해 만든 종합학교 14기생으로 입교했다. 워싱턴에 거주하는 김웅수 전 6군단장이 당시 학생 연대장(대령)이었다 한다. 동기생 250명은 3개월도 채 교육을 못 받고 소위 계급장을 달고서 전선에 투입됐다. 그는 이듬해 1월14일 임관해 7사단 5연대의 전투 소대장을 맡았다.
“강원도 영월 마차리 전투를 잊을 수 없어요. 인민군 3개 사단 패잔병들을 공격했는데 오히려 우리가 당했어. 눈이 80센티가 와 허벅지까지 푹푹 들어가는데 엄청 희생이 컸어. 내 소대에서도 32명 중 3명이 죽고 7명이 부상을 입었어요.”
겨울은 길었다. 중부 전선에서의 공방전은 계속됐다. 그러다 3월경 진부령 전투에서 그는 포탄 파편을 맞고 쓰러졌다. “그 순간 아, 당했구나 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어요. 그 다음에 기억이 잘 안나.”
야전병원으로 옮겨진 그는 부산의 제36 육군병원으로 다시 후송됐다. 그리고 9월14일 육군 중위로 명예 제대했다. 상이군인으로 예편한 그의 왼쪽 팔과 복부에는 지금도 파편 흉터가 선연하다.
“짧았지만 극렬했던 참전이었어요. 당시 소대장은 소모품이었지. 적의 타깃이었어. 안 죽고 살아남은 게 기적이야.”
경남 일대에서 중고교 교사로 근무한 그는 은퇴 후인 1995년 자녀 초청으로 도미했다. 애난데일의 한 노인아파트에서 노후를 보내고 있는 이경주씨는 ‘낙조에 구르는 조약돌’ 등 세 권의 시집을 냈다. 워싱턴 문인회도 출석하고 중앙시니어센터에서 문예창작반 지도도 한다. 노년에 들어 비로소 전쟁으로 잃어야 했던 문청(文靑)으로 되돌아 간 것이다.
그는 요즘도 몸의 상처가 느껴지거나 6월이 오면, 문득 센티멘털한 전쟁의 기억 속으로 빠져든다고 한다. 그리고 뉴스에서 어떤 나라의 내란의 소식이라도 접하면 꽃다운 청춘에 겪은 그 참상에 몸서리를 친다.
“전쟁의 논리는 간단해. 적이 안 죽으면 내가 죽는 거야. 말할 수 없이 비참한 게 전쟁이야. 어떤 이유로도 전쟁은 하진 말아야 돼. 서로 인내해야 돼요. 요새 젊은 사람들은 전쟁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아.”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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