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첫 경기에서 한국이 그리스를 꺾느냐의 여부는 지금 한국인들의 최대 관심사다. 그러나 그리스는 더하다. 전설적인 오토 레하겔 감독의 명예가 한국과의 대전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레하겔 감독은 그리스의 영웅이며 국민들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다. 독일인인 그는 그리스의 히딩크다. 그리스 축구에 관한 한 선수 선발에서부터 게임전략, 운영에 이르기까지 제왕적인 존재며 그리스 정치인들은 레하겔과의 친분을 과시할 정도다.
레하겔 이전 그리스 축구는 무명의 축구였으며 유럽의 말석차지를 당연한 것으로 여겨 왔었다. 그런데 레하겔이 유럽 국가들의 최대 축구제전인 UEFA컵 챔피언십(2004년)에서 무명의 그리스팀을 우승팀으로 올려놓은 것이다. 그는 하루아침에 영웅이 되었다. 그리스인들은 감격하여 사상 처음으로 외국인인 그에게 ‘올해의 위대한 그리스인’ 칭호를 수여했으며 제우스의 아들인 헤라클레스를 본 따 ‘레하클레스’ 혹은 ‘킹 오토’라고 부르고 있다.
레하겔 감독은 2001년부터 지금까지 9년 동안이나 그리스팀을 맡고 있으며 ‘2010 월드컵’에서 최장수, 최고령 감독으로 꼽힌다. 유럽 챔피언인 그리스팀은 ‘2006 월드컵’에서는 예선에서 탈락하여 독일에서 열린 본선경기에 진출하지도 못하는 수모를 겪었다. 그런데도 말 많기로 유명한 그리스인들은 레하겔을 교체하지 않았다. 그에 대한 신임은 절대적이다.
레하겔의 축구는 ‘수비축구’로 이름나 있다. 철저히 공격을 막다가 허점이 보이면 공을 몰고 들어가 장신 선수들이 상대방의 골문 앞에서 헤딩으로 공을 집어넣는 전법이다. 수비 위주의 축구이기 때문에 그리스팀과의 대전 관전은 지루하다. 그래서 말들이 많다. 왜 그리스팀은 유럽 다른 나라 선수들처럼 공격위주의 박력을 보이지 못하는가가 항상 문제점으로 지적되지만 레하겔에게는 마이동풍이다.
내가 그리스팀을 유럽 챔피언으로 올려놨잖아? 왜 이렇게 말들이 많아? 그리스 선수들은 체격이 커서 빠르지가 못해. 이탈리아나 브라질 선수 흉내 내다가는 지쳐서 후반전에 모두 나가 자빠진다구. 모르면 모두 좀 가만히 있어.
이것이 그의 주장이다. 180도 작전 변경 같은 것은 없다. 축구감독들은 레하겔의 전략이 어떤 것인지 다 알고 있다. 그래서 그리스팀은 다른 나라와 달리 연습장면을 쉬쉬하지 않는다.
그는 고집불통이다. 나이 많은 선수들이 너무 많아 팀을 젊은 선수들로 교체해야 된다는 여론이 그리스 내에서 들끓는데도 “경험이 중요하다”며 조언에 마이동풍이다. 그럼 내가 그만 둘 테니 다른 감독 고용해서 맡겨 봐 하는 식으로 배짱 좋게 나오기 때문에 그리스인들이 꼼짝 못한다.
올해 72세인 그는 이번 월드컵 경기를 끝낸 후 은퇴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대회에서 죽을 쑤면 그의 영웅 이미지가 상처 받아 ‘레하클레스’가 아닌 ‘파에톤’(태양의 신 마차를 몰고 가다 떨어진 헬리오스의 아들)이 될 입장이다.
그리스인들은 감정이 격하기 때문에 엎치락 뒤치락이 심하다. 한번 이기면 기세를 살려 승승장구하지만 패하면 계속 내리막을 달리는 스타일이다. 때문에 한국에 이기면 레하겔의 고집이 어느 정도 합리화 되지만 지는 날엔 “그 영감쟁이의 고집이 그리스팀을 망쳤다”는 원망을 듣게 된다. 이것이 그리스 쪽에서 본 경기전망이다. 이래저래 한국과 그리스의 경기는 죽기 살기의 한판 승부 성격을 띠고 있다.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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