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이 “예술은 사기다”라고 말했던 사실이 그렇게 잘 알려진 이유는 무엇일까. “예술은 사기다” 혹은 “예술은 사기가 아니다”라는 말은 언어에 불과하기에 예술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근원적인 답이라고 볼 수는 없다.
“예술은 사기다”라는 말에는 어떤 가벼움이 느껴지고 조크를 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어차피 현대미술을 잘 알 수 없는 판에 유명한 백남준이 “예술은 사기다”라고 말했다는 사실에 현대미술을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안도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런데 백남준은 왜 그 말을 했을까. 백남준은 예술에 대해 여러 가지 말을 했는데 유독 그 말이 잘 알려졌다고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하품을 했다는 그는 세상을 부정의 정신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다다의 예술을 추구했다.
어차피 예술이 삶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고, 캔버스에 잘 그려놓은 사과가 진짜 사과는 아니니까, 사과에 관한 예술은 사과가 아니다 라는 것을 말하려 했던 것일까?
세상이 알고 있는 대부분의 예술관은 사기이다, 즉 세상에서 생각하는 예술은 진짜 예술이 아니고 백남준이 보는 진짜 예술이 있다 라는 것을 의미했던 것일까. 인생을 다 바쳐 예술을 하고 비디오 예술의 선구자로 사랑받는 백남준이 정말 “예술은 사기다”라고 생각했을까. 그의 반어법적인 조크가 그의 예술관인 다다적 부정의 예술적 표현이었을까.
다다는 이미 100년 전의 부정의 정신인데 현대미술의 역사가 짧은 한국에서 그 말이 인구에 회자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치열한 부정의 정신이 긍정의 정신으로 가기도 전에 맥이 빠지게 하는 일은 아닐까.
예술은 절대로 사기가 아니다. 많은 것들이 쓸모없지만 예술이 인류문화의 가장 고차원적인 정신을 이어가고 수많은 껍데기들이 진정한 예술정신 앞에서는 그대로 드러난다. 더구나 온갖 치졸한 물건들과 삶의 양상이 난무하는 물질만능의 삶 중에 가끔 좋은 작품 하나를 만날 때의 기쁨을 생각해보면 예술이 절대로 사기일 수는 없다.
꽃을 그린 그림이 꽃이 아니듯이 예술이 환영일수는 있다. 좋은 꽃 그림은 꽃과 똑같이 잘 그려놓은 그림이 아니라 꽃의 존재감과 정신성, 꽃의 에너지와 꽃의 느낌을 그린 그림일 테니까 예술만이 지닌 특유의 예술성의 추구는 사기이기는커녕 모든 사기성을 간파해버리는 첨예한 정신이다. 그래서 거짓투성이의 삶을 꿰뚫어 버리고 날려 버리는 고수의 예리함을 드러낸다. 사물의 깊이를 치열하게 파고들어 삶의 본질과 정수를 드러낸다.
벌거숭이 왕의 벌거벗음을 말했던 아이처럼, 때로 난 백남준의 작업이 시각적으로 구차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가 시각 예술가로서가 아니라 음악가와 행위 예술가로서 예술을 시작했기에 시각적으로는 좀 구질구질해 보이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바이올린에 끈을 달아 끌며 유유히 바닷가를 산보하는 작업 사진을 보았을 때 시적이며 유머 감각이 뛰어난 현대의 노자를 보았고, 샤로테 무어맨이라는 첼리스트의 가슴에 비디오를 달아 연주를 시키는 작업에서는 여성의 육체와 비디오, 음악을 종합시킨 정염의 예술가를 만났다.
현대미술이라는 미명 하에 수많은 작품들이 사기를 치고 있다. 더구나 화상, 예술가, 큐레이터들이 공모하기에 더욱 문제가 크다. 이것은 진짜인가 가짜인가. 도대체 무엇을 하려하고 있는 가를 면밀히 들여다보는 일은 현대미술이 선사하는 재미이기도 하다.
좋은 그림 한 장, 좋은 시 한 줄은 결코 거짓으로 살지 않기 위해 고뇌하는 인간의 절실한 요구에서 태어나는 정직한 인간 정신의 상태이다. 백남준의 부정의 정신도 바로 거기에서 시작한다.
박혜숙 /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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