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이다. 법원에서 통고문이 나에게 날아왔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법원에서 레터를 받는다는 것은 기분이 좋은 일은 아니다. 누가 나를 고소했나? 증인으로 법정에 나오라는 케이스인가?

찜찜한 마음으로 봉투를 뜯어보니 교통위반으로 540달러를 내라는 것이다. 싫으면 재판을 신청하라는 내용이었다. 아니 내가 교통위반을 했다고? 기억에 전혀 없는 일이다. 더구나 교통위반을 했으면 경찰이 나에게 먼저 티켓을 발부해야 할 것 아닌가. 나는 경찰에 의해 정지 당한적도 없고 티켓을 발부받은 일도 없다.

위반혐의를 보니 빨간불에 내가 지나갔다는 것이다. 말도 안되는 소리, 자살하려고 빨간 불에 지나가나. 법원이 동명이인에게 잘못 벌금을 전달한 모양이로군. 법원에 가서 싸워야겠어. 나는 30여년 전 법원에 나가 나에게 교통위반 티켓을 발부한 경찰관과 싸워 이긴 적이 있다. 그런데 법원이 아침에 사람을 불러 놓고는 하루종일 기다리게 하는 데는 질색이었다. 언제 부를지 몰라 복도에서 대기상태로 6-7시간씩 기다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3장이나 되는 서류의 깨알 같은 글씨를 읽어보니 네거리에 설치된 자동카메라가 나의 위반을 잡아냈다는 것이다. 고민 끝에 교통위반에 대해 박식한 후배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억울한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되지? 나는 빨간불에 지나간 적이 없어”하고 기세당당하게 이야기 했더니 후배가 “서류를 더 읽어 보십시오. 그러면 교통위반자들의 상황을 비디오로 볼 수 있다는 사이트가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리 들어가 케이스 넘버를 누르면 선배님의 교통위반이 동영상으로 뜹니다”

내가 교통위반 한 상황을 컴퓨터를 통해 동영상으로 내가 볼 수 있다? 아니 그런 시스템이 있었나? 당장 그 사이트에 들어가 내 케이스 번호를 눌렀더니 내 차가 네거리에 접근하는 광경에서부터 운전하는 나의 얼굴까지 뚜렷하게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놀랍고 신기했다. 노란 불을 보고 달려오던 내가 우회전을 하는 찰라 신호등이 빨강으로 바뀌는 것이 아닌가. 나는 노란불에서 우회전 한줄 알았는데 비디오를 보니 빨간 불에서 우회전을 한 것이 명확히 보였다. 나의 잘못이긴 한데 벌금이 너무 비쌌다. 아무리 시의 예산이 적자라지만 우회전 위반에 이렇게 엄청난 바가지(?)를 씌울 수가 있나.

티켓이 보험료 인상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려면 운전학교를 다녀야한다. 그건 또 어느 세월에 가지? 후배에게 다시 물었더니 컴퓨터 운전학교가 있다는 것이다. 한글로 시험문제를 읽을 수 있기 때문에 매일 집에서 조금씩 풀어나가면 재미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30달러 내고 컴퓨터 운전학교에 등록했더니 수료증명서를 당신이 법원에 가지고 가겠는가 아니면 우리가 대신 보내주랴. 이번에는 한술 더 떠서 법원에서 당신의 서류를 접수했다는 증명서까지 자기들이 보내줄 수 있다고 했다. 물론 공짜가 아니다. 20달러.

법원에 가서 하루종일 기다리지도 않고 운전학교도 가지 않고 집에 앉아서 컴퓨터로 다 해결했다. 우회전 잘못해 600달러를 지불한 셈이다. 이 불경기에 어이없는 비싼 벌금을 냈지만 사회의 시스템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나에게 가르쳐준 뼈아픈 경험이었다. 컴퓨터를 모르면 앞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상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 이후 나는 노란불에서 건너가거나 우회전하는 악습을 버리기로 했다. 노랑 시그널을 빨강 시그널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철 /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