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의 저서 ‘무소유’가 더 이상 출판 되지 않는다는 발표가 있자 사방에서 ‘무소유’를 구하느라 아우성이다. 나도 그 발표를 듣고는 “내가 갖고 있는 ‘무소유’는 잘 있나” 싶어 책꽂이를 뒤져보니 먼지 쌓인 어느 구석에서 튀어 나왔다.
검은색 바탕에 흰 글자로 ‘법정 지음, 무소유’라고만 쓰여 있는 그의 저서는 1976년 4월에 발행되었는데 초라하기 짝이 없다. 사이즈도 작고 140쪽에 불과해 저서라기보다는 월간 잡지의 부록처럼 보인다. ‘무소유’는 이 수필집에 실린 36개의 칼럼 중의 하나다.
33년 전에 읽은 것이라 기억도 가물가물해서 다시한번 읽어보니 완전히 새로운 감동으로 다가온다. ‘33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가 달라진 것도 그 이유겠지만 법정스님의 글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름난 고승이기도 하지만 불교사상을 가장 쉽게 논리적으로 전달한 뛰어난 수필가라고 생각한다.
‘무소유’가 절판되어 못 읽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또 읽었다 해도 기억이 애매한 독자들을 위해 그가 주장한 ‘무소유’의 논리를 다시 살펴본다.
“우리는 필요에 의해 물건을 갖게 되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적잖이 마음이 쓰이게 된다. 그러니까 무엇을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것이다. 가졌던 것이 도리어 우리를 부자유하게 얽어맨다고 할 때 주객이 전도되어 우리는 오히려 가짐을 당하게 된다”
‘무소유’란 인도 산스크리트어의 시마티가(simatiga)이며 일반용어로는 가진 것이 없는 것, 남에게 나누어주는 덕행을 의미하나 불교에서는 번뇌의 범위를 넘어서는 경지를 뜻한다. 따라서 법정스님은 ‘무소유’라는 시마티가 불교사상을 글을 통해 가장 널리 전파한 승려라고 말할 수 있다.
그의 입적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나’ 못지않게 ‘어떻게 죽어야 하나’도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인생에서 참으로 중요한 것은 어떤 사회적인 지위나 신분 그리고 소유물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가 이고 그에 따라 삶의 가치가 결정 된다는 것도 보여 주었다.
또한 무소유란 아무 것도 가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이라는 그의 철학도 간소한 다비(화장)의식을 통해 시범보였다.
그의 저서 ‘무소유’에는 그가 39년 전에 쓴 ‘미리 쓰는 유서’라는 인상 깊은 글이 있다.
“죽게 되면 말없이 죽을 것이지 무슨 구구한 이유가 따를 것인가. 제명대로 살만치 살다 간 사람에겐 변명이 필요치 않다. 그럼으로 나의 유서는 남기는 글이기 보다 지금 살고 있는 ‘생의 백서’가 되어야 한다”
“장례식이나 제사 같은 것은 아예 소용없는 일, 요즘은 중들이 세상 사람들보다 한술 더 떠 거창한 장례를 치르고 있는데 만약 그 부질없는 검은 의식이 내 이름으로 행해진다면 나를 위로하기는커녕 몹시 화나게 할 것이다”
법정스님의 죽음은 향기 그윽하다. 자기 저서의 절판을 부탁한 것도 사후 출판을 둘러싼 다툼과 잡음을 고려해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살아생전에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입적하면서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시범보인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종교인이다. 그가 남긴 글 ‘무소유’는 이 시대의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다.
이철 /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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