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출전을 앞둔 피겨 스케이팅 선수의 다리를 누가 테러를 가해 부러트렸다면 어떻게 될까. 상상도 못할 끔찍한 스토리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는 데에서 피겨 스케이팅 세계 내의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가를 짐작할 수 있다.
1994년 1월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US 챔피언십 피겨 스케이팅 경기장에서 낸시 케리건이 괴한으로부터 몽둥이로 다리를 얻어맞고 쓰러졌다. 그녀는 우크라이나의 옥사나 바이율과 함께 그해 노르웨이에서 열리는 동계 올림픽의 금메달리스트 유망주였었다.
케리건이 테러를 당한후 “Why? Why?”라고 울부짖는 비참한 표정은 미국 스포츠사에서 잊을 수 없는 드라마틱한 장면이었다. 범인은 케리건의 경쟁자인 토니야 하딩의 전남편으로 밝혀졌다. 케리건은 다리를 다쳐 올림픽 출전선수 선발대회에 참가할 수가 없었는데도 미 빙상연맹은 회의를 열어 동계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도록 이례적인 조치를 취했다(케리건은 올림픽에서 은메달 차지). 이때 토니야 하딩의 대체 선수로 등장한 선수가 중국계인 14세의 미셸 콴이었으며 그녀는 후일 미국 피겨 스케이팅에 ‘미셸 콴의 세계’의 막을 열어 놓는다. 김연아가 가장 좋아하고 존경한다는 스케이터가 바로 미셸 콴이다.
2006년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이 미국을 방문하여 백악관에서 부시대통령과 만찬을 할 때 미셸 콴이 자리를 함께 했으며 국무부는 그녀를 그후 순회명예대사에 임명했다.
콴은 세계 피겨선수권을 5번이나 획득했으며 US 챔피언십을 9번이나 잇달아 차지한 놀라운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한번도 따내지 못했다. 은메달과 동메달에 머물렀을 뿐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그녀는 너무 긴장하여 점프한 후 넘어지는 실수를 범했다. 올림픽 이외의 경기에서는 수없이 6점 만점을 받아온 콴이 이같은 실수를 한 것은 피겨계의 불가사의에 속했으며 자신의 자서전 ‘승리하는 자세’에서 피겨 스케이팅은 기술이 아니라 결국 정신적인 마인드 컨트롤이 승부를 좌우하는 게임이라고 규정짓고 있다.
콴 이전에 미국 피겨 스케이터로 올림픽 금메달을 딴 일본계 4세 크리스티 야마구찌가 있지만 그녀는 콴만큼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녀는 겸손하다. 피겨 스케이팅은 기록경기가 아니라 기술과 연기를 심판이 주관적으로 판단하는 경기이기 때문에 심판에게 어떻게 보이느냐가 대단히 중요하다. 김연아의 취약점이 여기에 있다. 지난해 월드 챔피언십을 획득하기는 했지만 아직 미국과 유럽에 널리 알려진 선수는 아니다.
유럽출신 심판들은 유럽선수에 대해 애착을 가지는 경향이 있다. 몇 년전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서 일어난 채점부정사건이 그 예다. 러시아 심판이 아이스댄싱에서 프랑스 선수를 봐주는 대가로 프랑스 심판이 페어경기에서 러시아 선수에게 후한 점수를 주어 양쪽이 모두 금메달을 차지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피겨 스케이팅의 채점방법이 바뀌어 만점이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다. 아직도 부정의 여지는 있지만 신 채점제는 동양선수들에게 유리한 편이며 벌써 그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엊그제 밴쿠버에서 열린 남녀 혼성팀 경기에서는 예상을 깨고 중국의 센 수에와 자오 홍보팀(이들은 부부다)이 금메달을 차지하는 기적에 가까운 일이 벌어졌다. 여기에 오는 23일 출전하는 김연아가 싱글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한다면 세계의 피겨 스케이팅은 서양으로부터 동양으로 무대가 옮겨지는 대전환기를 맞게 된다. ‘21세기는 아시아인의 시대’라는 예감을 주는 현상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다.
이철 /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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