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개봉한 영화 ‘인빅투스’(Invictus)는 스포츠가 지닌 치유의 힘을 보여 준다. 남아공 넬슨 만델라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에서 만델라는 흑백 간의 상처를 치유하고 4,200만 남아공 사람들을 하나로 만들 수 있는 방안을 놓고 고민하다 럭비라는 스포츠를 찾아낸다.
영화는 1995년 열린 ‘럭비 월드컵’에서 남아공이 극적인 우승을 거두기까지의 과정과 뒷얘기를 풀어가면서 스포츠를 통해 화합을 추구했던 한 인간의 의지를 감동적으로 전달해 준다. 영화 제목 ‘인빅투스’는 만델라가 오랜 수감생활 중 애송한 19세기 영국시인 윌리엄 어네스트 헨리의 시다. 어떤 상황과 역경에서도 결코 꺾이지 않는 불굴의 의지를 뜻한다.
일요일인 7일 마이애미에서 44회 수퍼보울이 벌어진다. 이제 수퍼보울은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가 아니다. 미국의 문화를 상징하는 코드이자 연례 최대 축제로 자리매김 한지 오래다. 1억명 이상의 미국인들이 TV 앞에 모이고 전 세계적으로 수억명이 열광한다.
이미 최고의 스포츠 이벤트로 올라선 수퍼보울이지만 올 경기는 어느 해보다도 극적인 요소들이 풍성해 팬들을 더 설레게 한다. 드라마가 흥행에 성공하려면 출연진이 좋고 스토리 라인이 탄탄해야 하는데 올 수퍼보울이 바로 그렇다.
이번 수퍼보울에서 격돌하는 인디애나폴리스 콜츠와 뉴올리언스 세인츠는 각 컨퍼런스 1번 시드 팀들이다. 20년 만에 처음으로 정규 시즌 최고 성적 팀들이 격돌하게 된 것이다. 풋볼은 하도 이변이 많아 양 컨퍼런스 1번 시드팀이 함께 수퍼보울에 올라오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또 콜츠의 쿼터백 페이튼 매닝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리그 최고 선수다. 그러니 출연진 면모로는 더 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스토리 라인은 한층 더 매력적이다. 세인츠의 수퍼보울 진출 자체가 주는 의미와 감동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세인츠는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쑥대밭이 된 뉴올리언스의 희망을 상징하는 팀이다. 단순히 한 지역에 연고를 둔 풋볼팀이 아니다. 재기에 나선 주민들은 세인츠를 중심으로 꽁꽁 뭉쳤다. 정부에서 받은 구호기금으로 입장권을 사 팀을 응원했다.
그래서인지 세인츠 선수들은 자신들의 역할을 다른 팀 선수들과는 조금 다르게 인식한다. ‘직업’이 아니라 ‘소명’으로 여긴다고 말할 정도이다. 만년 꼴찌였던 세인츠는 카트리나 이전보다 나아진 성적으로 주민들의 기대에 부응했다.
세인츠 쿼터백 드루 브리스의 인생 역정도 팀과 꼭 닮아 있다. 인디애나 퍼듀 대학 출신의 브리스는 키가 6피트로 프로 쿼터백으로서는 대단히 작은 축에 속한다. 그런 까닭에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항상 저평가를 받는 설움을 당해 왔다. 풋볼계의 전형적인 ‘루저’였던 것이다.
좋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2006년 샌디에고서 방출 당한 브리스는 팀을 찾지 못하다가 겨우 세인츠에 안착했다. 세인츠가 수퍼보울까지 진출한 것은 전적으로 브리스의 어깨와 리더십 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약 세인츠가 우승한다면 브리스 개인의 설움과 만년 하위팀 세인츠의 뿌리 깊은 패배의식, 그리고 수마에 깊은 상처를 입었던 뉴올리언스의 아픈 기억을 한꺼번에 날려버리는 일석삼조의 승리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수퍼보울에서는 누가 우세할까. 객관적인 예상에서는 콜츠가 앞선다. 그러나 심정적으로는 세인츠로 기운다. 정치보다는 스포츠 우승팀을 예상하는데 있어 더 뛰어난 능력을 보여 온 족집게 ‘오바마 도사’는 한 방송 인터뷰에서 예상 우승팀에 관한 질문을 받고는 “나는 약세로 평가 받는 세인츠에 기울어져 있다. 뉴올리언스 지역에서 세인츠가 어떤 의미인지 잘 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마도 대다수 사람들이 같은 생각일 것이다.
세인츠는 과연 이번 수퍼보울에서 승리해 뉴올리언스판 ‘인빅투스’를 완벽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을까. 44회 수퍼보울의 관전 포인트는 바로 여기에 있다.
조윤성 /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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