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일어나는 현장을 TV 생중계로 볼 수 있는 기회는 극히 드물다. 미국인들은 이 희귀한 장면을 월드시리즈에서 목격한 적이 있다. 89년 10월17일 오후5시 막 지났을 때였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월드시리즈 3차전 경기가 열리고 있었는데 바로 그때 지진이 닥친 것이다. 월드시리즈를 집에서 보고 있던 미국인들은 덕분에(?) 샌프란시스코 지진을 생생하게 TV 중계로 볼 수 있었다. 리히터 규모 6.9의 강진이었는데 프리웨이가 무너지고 63명의 사망자와 3,800여명의 부상자를 냈다.
지진이 얼마나 무서운가는 세기의 테너 카루소가 캘리포니아 공연에서 울고 간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카루소가 공연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에 머물고 있던 1906년 4월18일 - 새벽 5시12분에 진도 7.8의 강진이 일어나 다운타운이 불바다가 되고 도시의 3분의 2가 무너졌다.
카루소는 당시 호텔에서 자다가 파자마 바람에 뛰쳐나왔는데 칠흑 같은 암흑 속에서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도 말도 안통하고 들은 척도 않아 땅에 주저앉아 울었다고 한다.
LA와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사람들은 지진의 공포를 이해한다. 지진을 너무나 자주 경험하기 때문이다. 자고 있을 때 지진이 일어나면 멀리서 기차가 달려오는 것처럼 침대에 희미한 진동이 느껴지다가 점점 그 진동이 커지면서 몇 초 사이 “후다닥 뚝딱”하는 소리로 변한다. 동시에 찬장에서 그릇이 튕겨 나오면서 깨지고 벽시계가 떨어지는 등 아수라장이 된다.
한번은 차를 타고 가다가 프리웨이에서 지진을 만난 적이 있는데 차가 갑자기 픽 소리를 내며 갈지자로 가길래 나는 타이어가 펑크 난줄 알았다. 그런데 내 앞차도 옆 차도 모두 갈지자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야 지진인줄 알았다.
또 한번은 다운타운 30층 빌딩 사무실에서 미국인 변호사와 상담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건물 전체가 휘청하며 좌우로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얼마나 무섭던지 의자를 두 손으로 꽉 잡고 공포에 질려 있는데 변호사 왈 “또 시작이네, 또 시작이야” 하더니 “염려 마세요. 이 건물은 지진에 대비해 지은 건물 입니다”라고 말하면서 나를 안심 시켰다. 그러나 나는 더 그 사무실에 머무르고 싶은 생각이 없어 대강 일을 끝내고 서둘러 나온 적이 있다.
며칠 전 서울에 폭설이 내리고 혹한이 찾아와 교통이 마비되었을 때 LA는 매일 화창하고 따뜻한 날씨였다. “이래서 ‘마마스 앤 파파스’가 ‘캘리포니아 드리밍’을 불렀군”하는 생각을 하면서 캘리포니아에서 사는 것을 다행스럽게 여긴 적이 있다. 미국 동부에도 요즘 폭설이 내려 교통이 마비되는 도시가 많다.
그런데 아이티에 지진이 일어나니까 “이거 남의 일이 아니지”하는 걱정이 드는데다 미국신문에서 “캘리포니아는 과연 안전한가”라는 특집기사를 게재하며 지진 이야기를 자꾸 화제로 삼으니까 약간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지진이 언제 일어나는가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다.
다만 장기예고만 가능할 뿐이다. 지진학자들에 의하면 30년 안에 진도 8.0 규모의 대지진이 캘리포니아에 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30년 안에”라니까 대지진이 내일 일어날지도 모르고 내년에 찾아올지도 모른다. 캘리포니아에 사는 사람들은 좋은 기후를 천연의 혜택으로 누리는 대신 대지진이라는 천연의 재앙에 대비하며 살아야 하는 두 개의 극과 극을 지니고 있다. 세상이 이래서 공평하다고 말하는가 보다.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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