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이다. “벌써 12월이네”하며 한숨을 내쉬는 사람들이 많다.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지만 해놓은 일도 없는데 어영부영하다 1년을 다 보냈으니 너무 덧없다는 뜻도 있는 것 같다.
사실 시간이 변하는 것이 아니다. 시간 속에 있는 사물이 변하는 것이다. 파랗던 나뭇잎이 낙엽이 되어 떨어지는 과정 때문에 시간이 흐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계절이 변하고 있어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시간이란 무엇인가. 퐁키엘리의 오페라 ‘지오콘다’ 3막에 ‘시간의 춤’이라는 발레가 등장하는데 24명의 발레리나가 각각 시간을 나타내는 의상을 입고 춤을 춘다. 디즈니 월드 제작의 만화영화 ‘판타지아’에서도 이 ‘시간의 춤’이 등장해 시간과 식물의 관계를 설명해 주는데 음악이 무척 밝고 화려하다.
나이가 들면 왜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질까. 아들과 아버지가 느끼는 1년의 길이는 다르다. 그것은 저금통장에 1만달러를 가진 사람과 100달러를 가진 사람의 조바심과 비교될 수 있다.
인간에게 있어 시간은 매우 감성적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1시간이 10분처럼 짧게 느껴지고 피곤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10분이 1시간처럼 느껴진다. 월요일의 오전과 금요일의 오전은 시간의 속도가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인다. 시간을 어떤 템포로 느끼느냐에 따라 각자의 삶의 페이스가 정해진다.
시간은 사람에 따라 속도를 달리한다. 선불교의 수행은 시간으로부터의 해방을 기도한다. 순간을 영원으로 연장하는 몸가짐이다. 또한 도를 닦은 무술인은 시간을 늦추려 노력한다. 이 경지에 이르면 상대방의 공격을 초고속 영화 필름처럼 느릿느릿한 동작으로 받아들여 상황을 컨트롤하는 능력을 지니게 된다. 테니스 선수 지미 코너스는 “나는 가끔 상대방의 공이 천천히 날아오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질 때가 있다. 이런 때는 누구도 겁나지 않으며 게임은 나의 승리로 끝나게 마련이다”라고 시간의 흐름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영화계의 수퍼스타 최진실이 목매 자살해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얼마 전에는 두산그룹의 회장까지 지낸 재벌 경제인이 자살해 세상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 이들은 시간의 흐름을 너무 느리게 받아들인 케이스에 속한다. 현재의 고통을 영원한 것으로 받아들여 자신이 해방되는 방법의 하나로 자살을 택한 것이다. 고통의 시간을 너무 길게 해석한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에게 올해는 너무나 고통스런 시간이었다. 그러나 고통은 인간을 사색하게 만들고 거기서 정신적인 성숙이 이루어진다. 인간의 육체는 음식으로 힘을 얻지만 마음은 사색으로 힘을 얻기 때문이다. 살면서 겪는 이 같은 고통은 언젠가는 값비싼 보석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2008년의 12월은 너무나 암울했으며 불확실에 가득 찬 절망적인 시간이었다. 그러나 2009년의 12월은 봄을 잉태한 겨울이다. 같은 징글벨 소리도 지난해에는 우울하게 들렸지만 올해는 밝게 들린다. 2010년이 희망으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직도 캄캄한 터널 속에 있지만 출구의 빛이 보이는 지점에 와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지점에 이르지 못한 채 질식해 쓰러졌던가.
“그치지 않는 비는 없다. 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으리”라는 쉘리의 시를 떠올릴 수 있는 계절이다. 고통스런 해의 마지막 장이다.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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