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LA의 한 큰 교회 목사가 당회원들 앞에서 전격적인 사임의사를 밝혔다. 이 교회는 재적교인이 1,000명에 달하고 12에이커의 넓은 부지 위에 잘 세워진 교회당 건물을 갖추고 있어 아주 안정적인 교회로 꼽혀왔다. 그런데 지난 1995년부터 이 교회에서 목회를 해온 담임목사가 이날 돌연 “목회 15년이 되는 내년 6월30일자로 교회를 떠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은퇴까지 아직 3년이나 남은 상황에서 나온 목회자의 급작스런 사임 발표에 교인들이 놀란 것은 당연한 일. 당회원들과 교인들의 만류에도 목사의 의지는 확고했다. “우리 교회에는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며 지금이 바로 그 때”라는 것이었다. 남은 임기 몇 년 더 채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교회의 성장을 이끌 새로운 지도자를 맞는 것이며 그런 변화는 교회가 가장 안정돼 있을 때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그의 사임의 변이었다.
목사는 측근들에게 은퇴 조건은 아무 것도 없으며 후임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거취를 분명히 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교회를 자기 것이라 여긴다면 쉽게 내릴 수 없는 결정이다.
몇 년 전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가 임기 중 갑자기 사임했다. 마하티르 총리는 말레이시아의 중흥을 이끈 탁월한 정치가로 존경받아 온 인물이다. 그는 사임을 발표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내 어머니는 항상 음식이 맛있을 때 숟가락을 놓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지금이 바로 그 때다.”
포만감이 배에서 뇌까지 전달되는 데는 보통 20분이 걸린다. 뇌가 “배부르다”고 느낄 때까지 숟가락을 잡고 있으면 이미 과식을 한 것이다. 과식의 괴로움은 숟가락을 놓아야 할 시기를 놓치는데서 비롯된다. 마하티르 총리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올바른 식습관뿐 아니라 절제의 미덕을 가르쳐 준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절제의 지혜를 깨닫고 실천에 옮기는 일은 쉽지 않다. 목회자가 교회를 떠나는 것은 은퇴나 분쟁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교회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때, 그리고 한창 성장할 때 강단에서 내려오는 일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 간혹 성공의 정점에 있는 것처럼 보일 때 자리에서 떠나는 인물들이 있다.
10년 전 다른 교회를 개척하기 위해 교인 수천명의 교회를 아무런 미련 없이 놓고 떠났던 한 목사의 퇴장은 교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그러나 신선함은 그저 잠시이고 남의 일일 뿐. 교회를 둘러싼 욕망의 표출은 날로 심해지고 있다.
새로운 리더십을 위해 아무런 조건 없이 교회를 떠나겠다는 목사의 결단은 진정한 교회와 목회자의 의미를 되새겨 보게 한다. 교회의 분란은 이 의미를 제대로 세우지 못한 데서 비롯된다.
자리에 오래 앉아 있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소유의식에 사로잡히게 된다. 자리는 단지 위임 받은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망각하는 것이다. 권력도 마찬가지다. 장기집권의 폐해도 이런 망각에서 시작된다. 박정희의 공과를 둘러 싼 논란이 시끄럽지만 만약 시해 당하기 전 물러났더라면 그의 신화는 한층 더 공고해 졌을 것이다.
한국 교회를 멍들게 하고 있는 교회세습은 목회자가 가장 경계해야 할 소유의식의 소산이다. 떠나야 할 때가 되면 “어떻게 세운 교회인데”라는 아까움이 고개를 든다. 그러다 보면 자식에게 넘겨주고 싶은 유혹과 은퇴를 하고 나서도 계속 자기 지분을 행사하려 드는 욕심에 걸려 넘어진다.
교회의 주인은 목회자가 아니라 그리스도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목사는 일정기간 파송 받아 섬기는 일을 하는 사람일 뿐이다. 교회가 성장하는 데도 건물 갖기를 거부하고 일정 기간 섬기고 나면 훌쩍 떠나는 일부 목회자들은 이런 정신을 구현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옛말에 “공을 세우면 몸을 빼는 것이 하늘의 도리”라고 했다. 목회자의 진퇴와 관련해 이보다 더 적절한 경구는 없을 것 같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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