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스탠포드-교토 다이아로그를 주재하기위해 일본을 다녀왔다. 교토시의 후원 하에 필자가 재직하는 아태연구소가 중심이 되어 올해 처음 열린 이번 회의는 ‘에너지, 환경, 경제성장’이라는 주제 하에 미국과 아시아 각국의 전문가 및 리더그룹 30명이 참여하였다.
때마침 일본의 총선이 끝난 지 얼마 안된 지라 참석자들 사이에선 일본의 향후 정국 및 외교방향에 대한 의견교환이 자연스레 이루어졌다. 이번 총선의 최대결과는 소위 ‘55년 체제’의 붕괴라 할 수 있는데 1955년 창립된 후 일본 정치를 독점해온 자민당이 참패하고 민주당이 집권, 명실상부한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것이다.
총선 후 일본 내 분위기는 대체로 환영과 기대 속에 우려의 목소리도 감지되고 있다. 민주당 정부가 무기력한 자민당 리더십과 막강한 관료체제를 타파하고 일본에 새로운 바람을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감과 함께 막대한 재정적자를 타개하고 선거공약인 복지확대정책이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감 역시 존재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민주당의 압승은 자민당 지도부의 실정과 무기력, 관료지배 체제의 폐단, 막대한 국가 부채와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상황에서 새로운 변화를 갈망하는 일본국민의 선택을 의미한다. 민주당은 그간 새로운 인물의 과감한 기용과 신세대 정치인 수혈을 통해 수권정당으로서의 능력을 제고시켜 왔으며 새 정부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많은 폐단을 가져온 관료지배체제를 변화시키고자 정치인과 전문가들로 구성된 국가 전략국이라는 기구를 새로 설치하여 전면적인 관료제 개혁에 나설 채비를 갖추고 있다.
민주당 정부는 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성장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는 구상도 갖고 있다. 자민당 정부는 수출위주의 성장전략을 구사해 왔지만 글로벌 경제 위기로 한계에 부딪힌 만큼 내수확대를 통한 성장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즉 자녀수당 지급, 공립고 무상화, 직업훈련자 수당 지급 등 중산층 및 소외계층에 대한 직간접 지원을 통해 국민생활지원->가계처분 소득확대 -> 소비를 통한 내수확대 ->경제성장으로 이루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외교 면에서도 대등한 대미관계와 아시아 중시정책을 통한 변화를 천명했다. 미국식 세계화를 배격하고 대미 종속외교에서 보다 대등한 관계로 전환하고 역사문제 등에서도 전향적인 자세를 취해 아시아 공동체 실현에 적극 나서겠다는 것이다. 하토야마 총리는 이미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으며 종군위안부 등 강제동원 피해자 보상에 대해서도 전향적인 입장을 언급한 것은 향후 한일관계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장밋빛 구상이 현실화 될지에 대한 우려와 회의론도 존재한다. 복지확대정책을 뒷받침하려면 내년부터 매년 16조엔 이상의 막대한 자원이 필요한데 860조엔이라는 천문학적인 국가부채를 안고 있는 상태에서 어떻게 추가재원을 마련할지 불투명하다. 또한 관료체제를 타파하겠다고 했지만 강력한 개혁안을 실현하기 위해선 관료들의 협조도 필요한데 이들의 조직적인 저항 내지 사보타지를 어떻게 극복할지도 미지수이다.
대미외교에 있어서도 종속적인 입장에서 탈피하겠다는 것이 미일 동맹의 수정을 의미하는 것인지 또 아시아 공동체수립 구상도 어떤 방식으로 추진할 것인지 아직은 원론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역사 영토문제에 대해서도 정말 이전과는 다른 전향적인 정책을 취할지 두고 볼 일이다.
그간 일본전문가들 사이에선 일본연구는 더 이상 별 재미가 없다는 자조석인 농담이 이루어졌었다. 선거를 해도 자민당이 얼마나 압승할 것인지 총리는 누가 될지에 대한 논의 정도에 그쳤지만 이번 선거결과가 가져온 충격은 전문가들의 흥미를 돋우기에 충분하다.
민주당 정부의 등장이 일시적인 돌풍으로 끝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일본의 시작인지 유심히 지켜볼 일이다.
신기욱 / 스탠포드대 아시아태평양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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