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에서 연설중인 오바마 대통령에게 “당신은 거짓말하고 있어!”라고 외친 공화당 하원의원의 어이없는 행동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간주할 일이 아니다. 배경을 살펴보면 미국에 심상치 않은 기류가 형성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의회에서 전례가 없던 일이다.
영국인에게 최대 모욕은 “너는 비겁한 자”이고 프랑스인에게는 “더러운 자”며 독일인에게는 “이 게으른 자”라는 표현이라고 한다. 미국인이 가장 모욕적으로 느끼는 단어는 무엇일까. “너는 거짓말쟁이야”라는 표현이다. 상대방을 거짓말쟁이로 취급하는 것은 인격모독이요, 정면도전이다. 이런 표현을 하원의원이 대통령에게 서슴지 않고 해댄 것은 흑인대통령을 우습게 여긴다는 증거다. 그것은 흑인 대통령 오바마에 대한 공화당 백인들의 콤플렉스 섞인 증오심이기도 하다.
미국 남부와 애팔래치안 산맥 근처에 살고 있는 백인 농부와 빈민층을 ‘레드 넥(red neck)’이라고 부른다. 뙤약볕에서 일을 너무해 목이 빨개진데서 비롯된 단어로 요즘에는 인종차별주의자, 백인 우월주의자, 학력이 없는 백인 서민층, 행동파 극우 보수주의자 등의 대명사로 쓰인다. 이 ‘레드 넥’이 많은 곳이 노스캐롤라이나와 사우스캐롤라이나며 이번에 오바마 대통령에게 소리 지른 조 윌슨 하원의원이 바로 사우스캐롤라이나 지역구 의원이다.
조 윌슨의 ‘거짓말’ 소동이 있은 다음날 워싱턴 광장에서 대대적인 공화당의 ‘오바마 의료개혁안’ 반대시위가 열렸는데 백인일색의 데모였으며 ‘조 윌슨을 대통령으로’라는 구호가 등장하기도 했다. 거기까진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할 수 도 있는데 오바마 얼굴을 히틀러로 그리는가 하면 “헤이, 오바마. 여기 팁 있어. 잔돈은 당신이 가지게”라는 인종차별적인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팁(tip)이라는 단어를 알려준다는 의미로 사용하는 척 하면서 흑인을 벨맨이나 웨이터에 비하한 것이다. 데모 참가자들은 대부분 ‘레드 넥’이었다.
‘레드 넥’의 오바마 증오가 심각하다. 위험수위에 이르렀다. 미국 동부와 남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레드 넥’의 데모는 겉으로는 의료개혁 반대인 것처럼 보이지만 껍질을 벗겨보면 오바마 증오 캠페인이다. 미국의 의료제도가 개혁 되어야 한다는 것은 백인 서민층도 인정하는 시대의 숙제다. 그런데 흑인인 오바마가 개혁하는 것이 싫은 것이다. 의료문제 뒤에 인종문제가 숨겨져 있다. ‘레드 넥’의 정부증오 현상이 어떤 비극을 초래하는가는 티모시 맥베이가 1995년 오클라호마에서 보여 주었다. ‘레드 넥’이며 공화당 지지자인 그는 정부청사를 폭파하여 168명을 숨지게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공화당의 윌슨의원이 의회에서 연설하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당신은 거짓말하고 있어!”라고 소리지른 것은 오바마 증오현상을 공공연히 부채질 했다는 점에서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공화당 의원의 수준을 의심케 하는 상식이하의 행동이었으며 공화당이 훌리건(축구경기장의 망나니)의 집단인 것 같은 인상을 풍겼다. 어글리 아메리칸이다.
공화당의 취약점은 항상 ‘적(enemy)’을 만들어 놓은 다음 그 적을 증오하는 힘으로 보수세력을 단결시키려 한다는 점이다. 한국의 야당이나 비슷하다. 증오를 무기로 삼는 정당은 과거를 향해 뒷걸음치는 정당이다. 미래를 향한 정당이 아니다.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증오심만 부채질 한다면 공화당은 저질 정당으로 추락할 것이다. ‘레드 넥’의 오바마 증오는 수많은 ‘어글리 아메리칸’을 생산해내고 있다. 미국은 지금 국외 탈레반이 아니라 국내 탈레반에 신경 써야 할 때다.
이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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