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콜라 병이나 마릴린 먼로의 이미지를 차용한 그림으로 유명한 앤디 워홀(Andy Warhol, 1928-1987)은 뉴욕에서 잡지나 신문의 일러스트레이터 겸 상업적 작가로 활동했다. 60년대 팝아트 운동의 대표 작가로 알려져 있는 그의 작품들은 고급 예술과 저급 예술간의 경계를 허물고 일반 대중들에게 난해하게 여겨졌던 추상 예술이 수반하던 엘리트주의에 대한 도전이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60년대 미국은 초강대국으로 성장하고 미국의 자본주의와 자유주의는 코카콜라로 대표되는 소비자 문화와 영화나 TV같은 대중문화 산업의 폭발적 팽창과 호흡을 같이했다. 워홀은 단순히 어렵게 여겨지던 예술을 대중들에게 더 접근이 용이하도록 만드는 것을 넘어서서, 미국이라는 나라가 부르짖고 있던, 대중들이 거의 의심하지 않았던 미국식 자유주의에 대한 딜레마를 그의 작품에서 다룬다. 또한 미래에는 누구나 적어도 15분간은 세계적으로 유명해질 것이다라는 그의 말은 할리웃 스타 등의 명사들이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소비되던 미 대중문화의 본질을 꿰뚫는 것이었다.
50년대 미국 미술을 주름잡던 잭슨 폴락으로 대표되는 추상표현주의가 예술에 부여했던 독창성과 작가 중심주의적 신화는 워홀의 캠벨 수프 깡통의 이미지로 도전받게 되고, 동시에 ‘미국’이 국가적 상징으로 보여주었던 여러 신화들도 적나라하게 해체된다. 동성애자였던 워홀에게 미국은 여전히 성적, 인종적 편견이 강한 나라였고 단순히 코카콜라를 사서 마시고 마릴린 먼로가 실린 잡지를 구매함으로써 누구나 평등하다는 메시지를 대중에게 주입시키는 곳이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자유주의와 젊음의 낭만을 대표했던 ‘자동차 문화’ 역시 워홀은 신문과 방송에 매일매일 등장하는 수많은 자동차 사고 이미지를 차용한 작품을 통해 그 신화를 깨트리려 했다. 그런 그도 1968년 동료에 의해 총격을 당해 거의 목숨을 잃을 뻔했지만, 이틀 뒤 로버트 케네디의 암살로 언론에 그의 총격 사건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60년대는 워홀로 대표되는 팝아트 운동 뿐 아니라 백남준의 플럭서스, 미니멀리즘 등 다양한 예술 운동이 분출되던 시기이기도 했다.
워홀이 무너뜨리려 했던 고급예술과 저급예술의 경계는 안타깝게도 그의 작품 역시 고급예술 작품들과 같은 상품성을 띄게 되고 70년대 개념예술 작가들은 예술 작품의 상품성과 박물관과 같은 기관에 대한 비판을 모색하게 된다.
본 글은 알재단(AHL foundation, Inc.)에서 매주 화요일 진행되고 있는 미술사 강의 중 일부를 소개한 것이며, 강사 김지혜는 뉴욕 시립대학교에서 미술사 박사과정 재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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