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기독교 연구는 시대적 사명입니다.”
시카고 신학대학교 발전위원회 명예이사로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는 이인식(사진· 73) 동양선교문화연구원장은 남은 생을 동양기독교 연구에 바치기로 다짐한 목사다.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교회 출석 인구가 내리막길로 접어든 서구(양)기독교를 바라보며 기독교의 위기를 느꼈다는 이 목사는 소금물속의 소금처럼 사회에 녹아있는 동양기독교사상이 21세기 기독교, 교회의 대안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목사는 “서양기독교가 빛이 되는 교회를 추구했다면 동양기독교는 소금이 되는 교회를 추구했다”며 “소금처럼 교회가 세상에 녹아 교회가 세상이 되고 세상이 교회가 된다면 현재 기독교의 위기는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양기독교에 대한 이 목사의 이 같은 소신은 한국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2003~2005년까지 3년간 월간 기독교 교육에 연재한 ‘성서와 한국절기’, ‘동양기독교의 흔적을 찾아서’, ‘불교 속에 기독교’가 뜨거운 호응과 함께 보수교단의 비판을 받게 된 것.
하지만 이 목사는 지난 2007년 동양기독교의 유물로 알려진 ‘대진 경교비’의 탁본 경교비를 동양선교문화원 뜰에 세우고 동양기독교 연구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이 목사는 “시리아를 통해 당나라에 유입된 경교는 헬라문화를 거친 서구(양)기독교와 달리 초기 기독교의 히브리적 사상을 그대로 유지한 동양기독교의 한 모습 이었다”며 “경교비가 세워졌던 대진사(당시 사찰과 교회는 모두 사라 칭했다)는 당시 동양기독교의 대표적 교회였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목사는 “한반도에는 당나라와의 교류가 활발했던 통일신라시대 선덕여왕 때 경교가 유입된 것으로 추정 된다”며 “대진경교비가 발견되면서 한국 내 동양기독교에 대한 연구가 시급해졌지만 이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이뤄지고 있지 않아 안타깝다”고 덧붙였다.이 목사는 한신대학교를 졸업한 후 안성 고삼장로교회에서 18년간 목회했으며 85년 도미, 커네티컷과 시카고에서 목회 및 신학자로 활동하다 귀국, 지난 2004년 자신의 고향인 안성에 동양선교문화연구원을 설립했다. <이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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